조선조 때 판소리는 팔자 고치는 예술이었다. 저자거리를 떠돌던 소리 소문은 사대부 사랑방을 거쳐 마침내 구중궁궐로 들어 갔다. 임금은 그들에게 벼슬을 하사했다. 양반의 밥벌이가 벼슬이고 천민의 밥벌이가 구실인데 구실하던 광대가 벼슬을 얻은 것이다. 이를 어전 광대라 한다. 필부가 생을 마치면 붉은 천에 ‘현고학생부군신위’를 써 관을 덮는데, 어전 광대가 죽으면 ‘현고참봉부군신위’ 등 제수받은 벼슬이름을 쓴다. 말 그대로 팔자가 바뀌는 것이다.
떠났다. 소리꾼들은 팔자를 바꾸기 위해 산중 깊숙이 들어가 독공(獨功)했다. 평생 입맛을 들인 먹을거리와 이별한 채 하루가 멀다 하고 밷어내는 각혈. 더러는 오래된 해우소 똥물을 먹기도 했다. 폭포수를 뚫고 나갈 소리를 벼르고 또 벼렀다. 그러던 어느날 새타령을 부르면 새가 날아 왔다. 홑이불을 배에 두르고 소리를 날려 보내면 홑이불이 트더졌다. 마침내 득음을 한 것이다.
판소리는 입에서 입으로 전수되는 구전심수(口傳心授)의 예술이다. 전수받은 이는 자기 나름대로의 소리를 창조하는데 이를 ‘더늠’이라고 한다. 국악계에서는 이렇게 더늠까지를 넣어 득음한 명창들을 전기 8명창, 후기 8명창, 근대 5명창으로 구분하여 불천위(不遷位)로 떠 받들고 있다.
전기 8명창은 정조, 헌종 때 활동했던 사람들을 지칭한다. 인물로는 권삼득, 송흥록, 염계달, 모흥갑, 고수관, 신만엽, 김제철, 박유전, 황해천, 주덕기, 송광록, 김성옥, 방만춘 중 8명을 일컫는다. 이들 시대에 판소리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고 다양한 선율을 개발하여 판소리 고유양식을 확립했다. 이중 송흥록은 동편제의 시조고, 박유전은 서편제의 시조다.
후기 8명창은 철종과 고종 초기에 활동했던 사람들을 말한다. 박만순, 이닐치, 송우룡, 김세종, 한송학, 정창업, 장자백, 정춘풍, 김찬업, 김창록 중 8인을 골라 부른다. 근대 5명창은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전까지 활동했던 명창 중 박기흥, 김창환, 김채만,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유성준, 정정렬 중에서 다섯을 고르는 것이다.
또 한사람이 있다.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다. 판소리 이론과 사설을 최초로 정립한 이다. 신재효가 말하는 소리꾼 조건으로 첫째 인물치레, 둘째 사설(辭說)치레, 셋째 득음, 넷째 발림을 말하는데 요즘의 연예인 조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진채선이라는 최초의 여성 판소리꾼을 길러냈다. 제자였지만 여인으로 사랑했던 그녀가 흥선 대원군의 애첩이 되자 ‘도리화가(桃李花歌)’와 ‘방아타령’ 사설을 지어 연모의 정을 그리기도 했다.
변상문 전통문화연구소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