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이충렬 지음, 유리창 출판)
이분들 말고도 현재 왕성하게 활동 중인 미술가까지 더해 훨씬 더 유명하고 역량 있는 화가들이 많을 줄 알지만 유명 화가의 작품 한 점이라도 소장해 볼 생각은 감히 해볼 수 없는 서민의 입장이라, 미술사나 화단의 현재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질 만한 입장이 못됨을 이해바랄 뿐이다.
그래서 가끔 ‘불꽃처럼 산 화가’에 대한 글이나 책 소개를 쓸 때면 S.폴라첵이 화가 고흐의 전기 격으로 썼던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을 모티브 삼은 서머 셋 모옴의 <달과 6펜스>를 주로 활용했다. 물론 그만큼 그 두 화가는 불꽃 같은 삶을 살았음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가난한 나라, 더구나 일본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에서 태어났던 근현대 우리 화가들의 삶 역시 맘 먹고 들여다 본다면 저들 못지 않게 치열했을 것이고, 고군분투의 예술혼에서도 뒤지지 않았을 것이다. TV나 신문기사를 통해 숱하게 접했던 ‘이중섭’의 그림과 삶이 그걸 증명하고도 남는다.
일제시대 남해의 섬에서 태어나 일본, 프랑스, 미국을 배회했던 화가 김환기. 그의 삶을 다룬 책은 그의 부인이자 예술의 동반자였던 김향안이 쓴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가 유일하다. 그러나 그 책의 한계는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의 김환기의 삶이 많이 빠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2005년 환기미술관에서 출판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지음>가 있지만 그 또한 전기가 아니라 수필집이다.
그런 측면에서 참 값진 책이 이번에 김환기 화백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판된 그의 전기,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이다.
저자 이충렬 작가는 사실 관계를 왜곡하지 않으려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 인터뷰 했고, 방대한 자료들을 뒤지고 또 뒤졌다. 더구나 ‘저작권법’이란 실정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편집 전체가 뒤바뀌는 과정을 밟고 또 밟은 산고 끝에 출판됐다.
이 부분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대목이 ‘김환기의 삶을 일부라도 은폐하고, 작가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 당하지 않기 위해 그의 그림을 함께 다루는 것을 포기, 정본 김환기 전기를 선택했다’는 작가의 고백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오히려 이 책을 빛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이화여전을 졸업, 내로라하는 문학가의 삶을 살 수도 있었으나 가난한 화가 남편을 위해 자신의 문학과 자존심을 내팽개친 김향안의 사랑과 열정 또한 화가의 삶 못지 않은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이제 이 전기를 바탕으로 김환기 화백과 그의 동반자 김향안의 내면의 세계까지 파고드는 ‘소설 김환기’가 누군가에 의해 ‘창작’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최보기 북컬럼니스트(thebex@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