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오수경(烏水鏡, 까만안경, 지금의 선글래스), 금토시를 하사하던 임금은 사라졌고, 수령방백들이 연회를 열던 관아도 문을 닫았다. 소리꾼들의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생긴 것이 창극이다. 그러나 ‘협률사에서 남는 것은 버선짝 밖에 없다.’는 말처럼 겉만 화려했다. 팔자를 고친다던 소리가 팔자를 그르치는 소리가 됐다.
목포시 남교동 남교소극장. 일제 강점기 때 청소년회관 건물을 보수해 만든 작고 소박한 소극장이다. 시간의 태엽이 110년 전으로 되돌아간 창극이 극장 무대 위에 올려졌다. 소포리 주민들이 기획, 연출, 출현한 ‘대현네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주요 줄거리는 대현네 부부가 젊은 시절 강강술래 마당에서 사랑으로 만나 결혼한 후 가난을 물리치고 행복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주동기 등이 '대현 엄매의 사랑' 공연 중 대현이 아버지 함 파는 대목 연습 장면 |
주민들은 무대 위에 모든 소리를 쏟아냈다. 한과 신명이 시나위 박을 탔다. 떼는 발자국 마다 깊이 눌린 흥이 흥건히 고였다. 흔드는 손끝마다 춤이 가득 묻었다. 옛날 옛적 마당 풍류가 박제된 무대 풍류와는 분명히 다른 새 시대의 루(樓)마루 풍류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문화의 상속이었고 새로운 문화 상속자를 찾아 떠나는 외로운 길이었다.
아이들의 울음 소리가 끊겨 버린 농어촌. 그래서 상속해 줄 문화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데 상속 받을 사람이 없는 딱한 현실. 우리의 모든 전통문화가 뿌리 박고 있는 농어촌의 촌락구조가 붕괴됨에 따라 아울러 함께 붕괴되는 전통문화.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시점에 소포리 주민들이 찾아낸 창극은 새로운 풍류문화의 북극성이 되고 있었다.
우리의 원형 모습을 생활 속에서 가꾸고 다듬는 소포리 주민들의 풍류가 계획대로 일본, 중국, 미국과 교류되길 진심으로 소망하며 계사년 원단에 비나리로 축원덕담 올린다.
더질더질 돌돌(咄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