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러진 시월상달 보름달이 꼬부랑 꼬부랑 난 고샅길에 하얗게 쏟아졌다. 개짖는 소리가 요란한 것을 보아 섬속의 시골마을이지만 사람의 왕래가 많음을 알 수 있었다. 다음날 시제를 모신다는 어느 할멈은 쪽마루에 앉아 조기를 굽고, 마당 설거지를 하는 팔십 촌부의 얼굴엔 세월이 꼬깃 꼬깃 구겨져 깊이 패인 주름에 박혀있다.
마당 설거지 중인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물었다.
“할아버지 이름 알 수 있어요?”
“나? 김덕춘여.”
“나이는요?”
“칠십오.”
“옛날엔 어떻게 소리하며 살았어요?”
순간 할아버지의 동공엔 EBS 방송국 교양 프로그램의 다큐같은 화면이 그려졌다. 옛집 앞 정자 처마끝은 쟁기 목털같은 단청이 금방이라도 날 듯 날개를 폈다. 넓은 앞마당엔 굿물을 든 수십명의 걸군농악패가 풍장치며 분주히 움직인다. 김 할아버지 동공이 촉촉이 젖었다.
소포 걸군농악. 전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 39호로써 보존회장 조한열 등 60명이 성성(星星)하게 지켜오고 있는 전형적인 군고(軍鼓)다. 고려시대 삼별초를 겪으면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진법을 돕기 위해 적진영에 굿물을 들고 잠입해 첩보를 입수 보고한 농군(農軍)이 그 시초다.
농군군고(農軍軍鼓)가 조선후기로 접어들면서 놀이 형식이 가미돼 정월 당산 굿을 비롯해 마당밟기 할 때, 풍어제 할 때, 논매기 할 때, 추석에 마을 축제로 농악을 즐길 때, 상여가 나갈 때 굿물을 치며 놀고 있다.
풍물을 다른 말로 농악, 풍장, 두레, 걸궁, 걸립 등으로 부른다. 진도에서는 걸군, 걸궁, 메구굿, 풍장굿, 지신밟기, 마당밟기라 하며 노동예능으로 볼 때는 두레라하고, 풍류로 볼 때는 풍장이라고도 한다. 다른 지역 풍물은 연희를 중심으로 하지만, 소포 걸군농악은 적에 관한 첩보를 입수하기 위한 진법 형태로 대오를 짜서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소포 걸궁농악도 세태의 변천에 따라 남자가 부족해 그동안 포함시키지 않았던 여자들도 회원으로 참가하여 보존활동을 하고 있다. 마당, 판은 없어지고 무대만 있는 현재의 풍류가 진도 소포리까지 침습해 가고 있었다.
김 할아버지의 동궁속 화면이 바뀌었다. 옥당(玉堂)이었다. 더 할 수 없는 예능의 극치를 일컫는 야생의 변(變)이다. 달 밝은 마당에 수십명의 부녀자들이 손에 손을 잡았다. ‘오동추야 달밝은데 님의생각 절로나네’ 느린 진양조의 강강술래 인사말이 청아하게 달빛타고 흐르다 이내 빠른 자진모리로 변해 흘렀다.
강강 술래 |
강강 술래 모습 |
강강술래 둥근 춤 너머 죽음이 보였다.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죽음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죽음이 있기에 의미가 있다. 컴퓨터 그래픽 같은 강강술래 화면에 죽음을 슬퍼하는 상주의 모습과 상여소리 만가(輓歌)가 슬프게 슬프게 울려 퍼졌다.
윤회(輪回). 사람이 죽으면 업 따라 인연 따라 다시 태어난다. ‘다시 태어나다’의 말이 변하여 ‘다시래기’다 됐다. 슬픔에 잠겨 있는 상주를 위로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벌이는 마당극이 ‘다시래기’다. 국가지정 중요 무형문화재 제 81호다. 출상전 날 밤 전문 소리꾼을 초청해 잡가, 북놀이, 판소리 등을 걸지게 부르고 봉사와 봉사처가 등장하여 웃음꽃을 피운다. 죽음이 또다른 의미의 축제로 승화되는 것이다.
상여소리 만가(輓歌)는 전남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 19호다. 꽃상여가 망자를 태우고 바람에 흔들리며 외롭디 외로운 길을 떠난다. 이 길을 배웅하는 산 자들은 북, 장고, 꽹과리, 피리를 치고 불며 긴 질베를 잡고 죽음을 노래한다.
‘늙어 늙어 만녀주야. 다시 젊기 어려워라 하날이 높다해도 초경에 이슬오고 북경이 멀다해도 사시행차가 왕애를 하네. 산에 나무를 심어 유전 유전이 길러내야 고물고물이 단청일세. 제화 좋네 좋을 시구나 명년 소상 날에나 다시 만나보세. 가자서라 가자서라 북망산천을 가자서라. 가시는 날자는 정해졌으나 오시는 날짜는 기약이 없네.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북망산천 나는 간다. 일세동방 다굴적에 청용한쌍이 묻혔으니 알아감시로 다궈나 보세. 인제가면 언제오나 어기청청 다구요.’
김 할아버지 동공속의 옛 화면이 삭제됐다. 죽은 자는 죽은 자의 길을 갔다. 산자는 산자의 길을 가야 한다. 산자의 길은 일을 하는 것이다. 달 지니 해가 떴다. 아침 동살 받으며 소포리 앞 바다에 닻배가 떴다. 머리에 흰 수건 두른 조야스런 뱃사람들의 푸른 힘줄이 팔뚝에 불끈 불끈 솟았다. 닻배소리(전남도 무형문화재 제 40호)가 푸른 바다 너머 물결 따라 바람 따라 울려 퍼졌다.
닻배소리에 덧씌운 소리가 환청으로 들렸다. 지난 늦여름 초록이 짙은 밭에서 아낙네 예닐곱명을 만났다. 고추를 따고 있었다. 충충한 고추나무는 아직 앙징맞게 작은 하얀 꽃을 그냥 달고 있는 데 새빨간 고추가 실하게 열렸다. 머리에 쓴 수건 아래로 남도들노래(국가 지정 중요 무형문화재 제 51호)가 애절하게 흘렀다.
‘이슬비는 부슬부슬 굵은 비는 담상 담상. 여그도 놓고 저그도 놓아 두레방 없이만 심겨 주게. 어기야 여허 여리하 여라 상사로세.’
상사소리로는 신이 좀 부족했는지 진도 아리랑으로 넘어갔다. 세마치 장단에 맞춰 지르는 소리(높이 부르는 소리), 숙이는 소리(낮게 하는 소리)를 섞어가며 멈춤없이 불렀다. 소포리엔 그렇게 담백한 풍류가 넘쳐 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