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창조경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노동과 자본의 양적 투입 확대와 모방 기술에 기반을 둔 추격형 (follower) 경제성장 모델이 한계에 부딪쳐서다.
특히 2000년 이후 경제가 저성장 저고용 구조로 바뀌면서 더욱 그러하다. 최근에는 늘어나지 않고 있는 밥그릇을 놓고 계층 간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창조 경제는 과거의 양적 성장에서 벗어난 질적 성장,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성장, 일자리를 창출하는 고용 친화적 성장을 목표로 한다. 이는 창조 (creativity)와 혁신 (innovations)을 통한 새로운 시장 창출로 성장과 일자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경제 패러다임으로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이러한 창조경제의 실현을 위해서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개인과 기업이 창조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여건, 혁신을 주도할 인재, 슘페터 (Schumpeter)가 말하는 위험과 불확실성을 무릅쓰고 창조와 혁신적 파괴를 감행하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그리고 이런 인재와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담아낼 수 있는 개방된 시장이 필요하다.
아쉽지만 우리는 이러한 창조경제의 생태계 즉 혁신을 주도할 인재뿐만 아니라 개발된 혁신적 기술을 시장화 시킬 수 있는 제도 및 정책 그리고 기업가 정신을 고양하는 기반이 크게 부족하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정부는 최근 미래창조기획부를 컨트롤 타워로 하여, 창조경제를 위한 많은 정책 과제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과거 어려운 환경 하에서도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우리 경제의 저력과 이스라엘 핀란드 등 일부 국가의 성공 사례에 미루어 정책과 투자가 적절히 뒷받침된다면 어느 정도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창조경제라는 대장정을 위해 긴 안목과 호흡을 가지고 정책을 준비하고 실행하려는 모습이 아쉽다. 작년 중국이 세계은행과 함께 “중국 2030 보고서”를 준비하여 향후 20년간 경제가 나갈 로드맵을 준비한 것처럼, 우리도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 향후 20년간 무엇해야 할지에 대하여 치열하게 생각해 보아야 되는 것이 아닐까?
또한 발표된 정책 과제들을 보면 원론은 좋으나 각론은 정리가 안돼, 누가 (주체), 무슨 결과를 (선택과 집중), 어떻게 (방법), 언제까지 (과제기간) 추진하고 창출할 수 있는 지에 대한 밑그림을 찾기 어렵다.
제한된 시간과 자원을 핵심 문제와 분야를 선택하여 집중하기 보다는 부처별로 정책과 과제를 백과사전식으로 나열한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정책 과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추진 주체를 명확히 한 뒤 구체적인 실행계획 (time-bound action plan)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과거 70-80년대의 개발시대와는 달리, 경제가 복잡 고도화되고 민관간의 정보비대칭성이 심화된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들을 보면 여전히 정부주도형으로 민간의 역할과 적절한 지원방향에 대한 논의는 뒷전에 밀려있다.
개인과 기업이 창조경제의 추진 주체임을 인식, 정부는 직접 개입보다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지원하는 역할 (facilitator)에 머물러야 한다. 즉 정부는 개인이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이를 쉽게 시장화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혁신 친화적인 금융 및 자본시장 기능을 구축해야 하고, 혁신을 주도할 인재를 육성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정부에 의한 특정 산업과 분야에 대한 직접적 자원배분은 시장 실패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피해야 한다. 그래야 만이 90년대 말 벤처 붐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을 수 있겠다.
창조경제의 성공적 실행을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절실하다. 많은 정책들이 백과사전식으로 발표되다 보니 도대체 정책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일과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실행될 것인지 걱정이 든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정부가 꼭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은 없거나 뒷전에 처져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수많은 정책 가운데 기업가 정신과 창조적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할 교육에 대한 비전은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우리 교육은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 배양보다는 여전히 획일적 답안과 암기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교육은 생산요소의 투자 확대와 모방기술에 기반을 둔 개발 경제시대에나 맞는 구시대적인 것으로, 창조경제엔 적합하지 않다. 창조적인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핀란드나 이스라엘처럼 과감하고 근본적 교육 개혁 및 투자가 필요하다.
혁신은 다른 분야 간의 융합에서 나온다. 정부가 창조경제를 제대로 실천하고자 한다면 각 부처가 먼저 칸막이를 뜯어 없애는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참신한 아이디어나 기술이 여러 부처의 복잡한 규제나 절차로 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꽃필 수 있다.
혁신은 리스크를 수반한다. 이 리스크를 줄여 주기위해서는 정부가 정책의 예측가능성을 제고해야 하고, 각 부처 간 정책에 혼선이 있어서는 안 된다. 엇박자의 한 예로, 경제력 집중과 내부거래 억제 차원에서 시행한 최근 대기업 SI (시스템 통합) 업체에 대한 공공사업 참여 제한 조치를 들 수 있다.
IT와 소프트웨어 융합 산업을 성장 동력 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창조 경제의 큰 방향에서 볼 때, 규제보다는 자본과 기술력을 갖춘 대기업과 재빠르게 변신이 가능한 중소기업이 협력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인 (incentive)정책이 바람직했다.
특히 거대 시장 형성이 예상되는 빅데이터 (big data) 관련 시장에서 혁신적 비즈니스모델 창출을 위해 국가적 역량 집결이 절실하다는 점과 향후 해외 시장 확보에 공공 시장에서의 경험이 테스트 베드(test bed)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또한 해외인력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기존의 비즈니스 관행 (삼성전자와 삼성SDS는 6만 명 이상의 프로그래머를 인도 등에서 아웃소싱하고 있는 실정) 에서 탈피하여,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산학 협력을 통하여 고사되고 있는 소프트웨어 인력자원을 육성함으로써 국내 관련 산업 발전과 고용증대를 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의 초점을 맞추는 것도 생각할 수 있겠다.
*본 글의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서 아시아개발은행 (ADB)의 공식입장과는 무관합니다.
*나성섭 아시아개발은행(ADB) 남아시아 인간 사회개발 디렉터 프로필
고려대학교를 거쳐 1993년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이후 일본 국제기독교대학과 고려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지금은 국제경제기구인 ADB의 남아시아 인간개발 디렉터로 근무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의 경제, 인프라, 교육, 보건 등 폭 넓은 분야에 대한 정책 및 투자계획 입안 및 실행에 직접 참여한 생생한 현장 정책 경험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