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으로 주식·펀드 거래…증권사 HTS·MTS 흔들까
국내 증권업계, 글로벌IB보다 ICT 인력 비중 낮고 혁신 느려
리테일·비대면 영업 강해 기존 증권사 중장기 리스크
진입장벽 낮춰 금융투자업계 파이 키울 것이란 긍정론도
[서울=뉴스핌] 이고은 기자 = 국내 대형증권사 A사의 고위 간부는 사내에서 신입 직원을 마주칠 때마다 '우리 회사의 가장 큰 라이벌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이 질문에 다른 대형 증권사 이름을 대면 틀렸다고 말한다. 이 고위간부가 생각하는 정답은 '카카오'다.
증권업계가 긴장하며 지켜봐왔던 카카오페이의 바로투자증권 인수가 지난 22일 금융위에서 적격성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났다. 금융위는 다음달 5일 열리는 정례회의에서 이 안건을 최종 의결할 계획이다. 다음달부터 카카오가 본격적으로 증권업에 진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카카오는 지난 2018년 10월 바로투자증권 지분 60%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한 뒤 지난해 4월 금융위에 대주주 적격 심사를 신청했다. 그러나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으면서 심사가 중단됐고, 지난해 11월 무죄 판결 이후 심사를 재개해 9개월만에 적격 판정을 받았다.
앞서 카카오는 카카오톡 플랫폼 안에서 주식·펀드·부동산 등 투자상품 거래를 가능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증권업계는 많은 이용자를 보유한 카카오톡이 참신하고 소비자 친화적인 사용자환경(UI·User Interface)을 앞세워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과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를 흔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간 증권업계는 변화에 보수적인 금융업 중에서도 가장 혁신에서 뒤쳐져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은행이 핀테크를 받아들이는 속도를 쫓아가지 못했고 글로벌 투자은행(IB)과 비교해서도 변화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느렸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증권업계의 ICT 인력은 전체 인력의 3~5%에 불과하며 대부분 금융투자업 핵심 업무에서 배제돼있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 UBS 등 글로벌IB가 전체 인력의 10~25%를 ICT 인력으로 채용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최근 증권업계 수익비중에서 IB의 비중이 크게 늘면서 리테일의 비중이 줄었지만 그럼에도 전체 수익의 30~40%를 차지한다. 카카오가 많은 이용자와 편리한 UI를 무기로 비대면 영업에서 기존 증권사를 능가한다면 증권업계 리테일 구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
김고은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카카오는 리테일에 강점이 많으니 비대면 영업부터 시작할 것"이라며 "증권업계 리테일 수입 측면에서 카카오의 등장이 중장기적 리스크 요인인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존 증권업계가 카카오의 등장으로 오늘내일 안에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사업구도가 재편될 수 있다"며 "과거 ICT기업을 모기업으로 한 키움이 등장했던 것처럼 5년 10년에 걸쳐 서서히 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카카오의 증권업 진출이 증권업계의 '메기'가 되어 금융투자업 전체의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메기 효과'란 정체된 생태계에 메기 같은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면 개체들이 생존을 위해 활력을 띄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 연구위원은 "카카오는 ICT 기술력을 가지고 금융에 적응하면서 인터페이스 등의 면에서 기존의 플레이어보다 차별화된 전략이나 서비스를 가지고 나올 것"이라며 "기존 고객이 카카오로 유입되는 것도 있겠지만 신규 고객을 유입시키면서 새로운 시장층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강자가 등장하는 것이니 기존 증권업계의 위기감이 있겠지만, 카카오가 자본시장에 더 쉽게 들어올 수 있게 진입장벽을 낮추고 기존 플레이어들의 관성과 관행을 업그레이드 시킬 계기가 된다면 긍정적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goe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