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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훈의 4색 여행기] 쪽빛의 유혹 - 에게 해의 환상적인 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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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실은 호화스런 분위기가 역력하다. 갑판으로 나오니 산뜻한 야외 풀이 있고 하얀색 간이의자에 비키니 차림의 서양 여자들이 썬텐을 즐기고 있다. 나는 적당한 눈요기를 하고 갑판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본다.

에게 해. 고교 시절에 에게 문명을 배울 적엔 ‘에게 그게 뭐야’ 할 때의 에게가 떠오르기도 했고 에그 즉 계란이 연상되기도 했던 단어. 그러나 어디서 싹터 오르는지 알 수 없는 야릇한 동경과 설레임을 품게 해준. 그 에게 해를 바라보는 동안 기분이 고조되고 있었다. 눈과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에머럴드 빛 바닷물. 서양 문명의 주춧돌이라 할 수 있는 그리이스 문명에게 씨앗을 전해준 미케네 문명보다 더 이전에 발아해 영향을 준 시원 문명이 태어난 곳이니 말이다.

크루즈가 가르고 지나감에 따라 하얀 포말이 일어난다. 에머럴드 빛 바닷물과의 조화가 경이롭다. 피레우스 항을 떠나 몇 시간 풍경에 마냥 취하는 사이 하얀 빛 일색의 섬이 나타난다. 미코노스 섬이다. 하선해 걸어나갔다. 아담한 집들과 벽, 오밀조밀한 골목길들이 온통 흰색으로 칠해져 동화의 나라에 온듯한 착각이 일어난다. 집들은 창마다 빨강, 초록, 보라색 꽃들을 꽂아놓아 마치 레고 장난감을 확대해놓은 것 같다. 미코노스라는 이름은 아폴론의 손자인 미콘스(Mykons)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리이스 신화는 이처럼 그리이스의 지명뿐만 아니라 곳곳에 영항을 미치고 있다. 이 섬은 또한 신화에서 제우스와 기간테스 즉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의 자식들인 거인족과의 싸움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그런 환타지를 떠올리며 그림같은 풍경 속을 거닐다가 나는 바지를 걷고 바닷물로 걸어 들어갔다. 청량감이 스폰지같은 내 몸 속으로 파고든다. 멀리엔 수평선이 곱고 이쁘기만 하다. 절로 일어나는 취기가 마음 속에 하프를 켠다.

미코노스에서 꿈 같은 시간을 보내고 승선해 다시 에게 해를 떠간다. 이젠 산토리니 섬이다. 유럽 최고의 관광지의 하나로 손꼽히는 이 섬은 소설 <그리이스인 조르바>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저자인 니코스 카잔차스키는 크레타 출신인데도 이 섬을 무척 좋아했나 보다. 하긴 ‘죽기 전에 에게 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은 복이 있다'라고 <그리이스인 조르바>에서 말했을 정도이니. 카잔차스키는 몰락한 그리이스의 부활을 꿈꾼 사람으로 그가 태어날 당시의 크레타는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았고 그의 조부와 부친은 터키에 저항해 독립운동을 했다. 집안의 이런 영향 외에도 니체에 심취해 자유 정신을 흠모한 그는 그리이스의 부활을 모색하는 한편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을 저 주옥 같은 소설에 박아놓고 있다.

산토리니 섬은 기원전 1500 년 경에 화산이 폭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파편이 남쪽으로 125 킬로미터나 떨어진 크레타 섬을 덮쳐 한참 번창하던 미노아 문명을 파괴했다고까지 하니 그 위력이 상상 초월이다.

화산으로 인해 피괴를 당했고 그리이스의 시원 문명에 절대적 피해를 입혔음에도 그 섬에서 보는 석양은 세계 최고의 석양 중 하나라는 칭송에 전혀 부족함이 없을 만큼 장관이다. 아름다움은 아이러니를 먹고 사는 동물인가 보다. 미코노스 섬처럼 배경마저 하얀 색의 건물들이라 석양빛에 변함에 따라 분홍빛, 붉은 빛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동안에 내 마음도 함께 물들어가고 있었다.

크루즈에서 하루를 더 잔 다음 날엔 ‘에게 해의 장미’라 불리는 로도스 섬 관광에 나섰다. 하선해 혼자 돌아다닐까 하다가 섬이 엄청나게 커 엄두가 안나 그룹 투어를 신청했다. 날씨는 건조했고 길에서 먼지가 폴폴 날린다. 사십 여 분 달리자 고원에 위치한 고대 도시 린도스에 도착했다. 그러나 나는 바다 생각이 간절했다. 아크로폴리스가 보이는 정상까지가 까마득하게 멀어 적어도 몇 십 분을 걸어올라야 할 것 같았고 날씨가 찌는 듯해서였다. 투어를 간단히 하고 에게 해에서 수영을 즐기려 했는데 차질이 생길 것만 같아 조바심이 났다. 가이드인 그리이스 남자가 강한 악센트의 영어로 저돌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도 짜증스러웠다.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나 고린도에서 실컷 보았기에 섬까지 와서 또 본다는 게 달갑지 않았다. 바다를 뒤로 하고 산으로 오르는 발걸음이 지치기 시작했다. 헉헉거리며 언덕을 좀 더 오르자 저 위에는 고대 도시 린도스의 고색창연한 아크로폴리스가 보이고 저 밑으로는 에게 해 섬들의 바다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린도스 해변이 유혹한다. 나는 찰랑찰랑대는 쪽빛의 유혹을 참지 못해 아크로폴리스를 포기하고 해변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유적지나 역사가 무슨 상관이고 고대 문명이 어쨌단 말인가. 가슴이 부서지도록 아름답기 그지없는 쪽빛 바다 앞에 나는 부서지말았다. 동행하던 관광객들을 뒤로 하고 혼자 해변을 향해 빠르게 걸어 내려갔다. 정말 푸르렀다. 맑음 자체였다. 해변에서 멀어질수록 물 색깔이 선명하게 구별되도록 변해갔다. 바닥이 환히 보이도록 투명하다가, 푸르스름하다가, 파란 잉크색으로 변해가는 물빛. 바로 눈 앞엔 물에 촉촉히 젖은 반 누드의 여자가 머리칼의 물기를 털며 해변 쪽으로 걸어나가고 있었다. 바다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에게 해의 진수를 본 것 같았다. 크루즈 갑판에서 바라보는 맛과는 또 달랐다. 내 몸이 그 안에 담겨 있다 보니. 이 파아란 물 바탕에서 보자 저 꼭대기의 아크로폴리스가 더욱 신비롭게 보였다. 고대인의 가슴 속에도 이 파아란 순정이 흘렀으리라.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을 세운 고대인의 몸도 이 청정한 잉크빛 물결에 충분히 적셔졌을 것이다. 자연의 경이 앞에 모든 문명은 고대이든 현대이든 장난감일 뿐이다.

나는 고대의 아크로폴리스가 호위해 주는 쪽빛의 에게 해에서 수영을 해나갔다. 얼마나 벼르고 벼른 에게 해 수영인가. 속이 다 시원했다. 파란 물 속에서 첨벙거리며 실컷 놀았다. 지치면 모래 사장으로 걸어나와 일광욕을 즐기다가 물기가 마르면 다시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젖은 몸으로 바닷물과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달리 무엇을 하겠는가.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자연의 경이 앞에 달리 무엇을 하겠는가.

풍요로 채워진 가슴은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와 섬의 구시가지를 천천히 걷는다. 하얀 집들과 아름다운 거리, 고풍스런 중세의 성곽, 그림엽서 파는 숍....모두 멋지다. 배로 돌아오는 길에 과일 가게가 있어 망고를 샀다. 망고 중에 이집트 망고가 가장 맛있다고 수더분한 가게 주인이 말해 준다. 이집트에도 가고 싶다. 망고 하나에도 마음이 팔린다. 큼직한 노란 망고를 들고 선실에 오르는 기쁨. 배는 또 떠난다. 에게 해는 여전히 내 마음을 사로잡아 저녁 식사를 미루고 갑판 난간에 또 기대어 바라본다. 어둠이 밀려온다. 저 어둠이 에게 해를 삼키기 전에 더 보고 싶다. 이틀 동안 선상에서 질리도록 보아도 마냥 바라보고 싶은 에게 해. 캄캄한 적막에 쌓여 암흑만이 보일 때까지 강한 바람을 맞으며 나는 서 있었다. 밤 늦게 저녁 식사를 하며 그리이스의 술인 우조를 시켰다. 미노아 문명의 크레타 섬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에게 해에 파랗게 씻은 몸이 우조에 취하는 맛은 말로 표현되어질 성질이 아니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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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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