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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주택 변천사] 때되면 나눠주던 주택 상품으로 둔갑, 투기광풍 집값 폭등에 중국경제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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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경제 분배에서 1998년 매매 상품 전환
2003년부터 경제성장 부동산 의존도 심화
4차례 부동산 투기 광풍, 경제 안정 위협

[서울=뉴스핌] 강소영 기자=중국 건국 70년 동안 많은 분야에서 변화와 개혁이 이뤄졌다. 중국 민생과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도 그중 하나다. 부동산 산업은 다른 분야보다 다소 늦게 개혁이 이뤄졌지만, 변화의 속도는 엄청났다. 계획경제 아래에서 집은 정부가 분배해주는 공공 자산에 불과했지만, 현재 중국에서 부동산은 자산증식을 위한 최고의 투자 대상이자, '내 집 마련'이라는 인생의 중요 목표물이 될 정도로 중국인들에게 중요한 자산이 됐다.

중국 부동산 시장과 산업은 1998년 전후로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그 해 이뤄진 부동산 개혁 정책으로 정부에서 직접 공급하는 복지주택 제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1998년 6월 15일 진행된 전국 부동산 개혁 업무 회의를 통해 하반기부터 주택 직접 공급을 중단하고, 현금 주택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결정됐다. 계획경제하에서 정부가 분배 해주던 주택이 하나의 상품으로서 시장에서 거래가 되기시작한 것이다. 

이후 새로 지어지는 주택은 임대가 아닌 매매 원칙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 부동산 시장이 본격적인 성장기에 진입, 중국 경제성장을 지탱했고 중국인의 삶의 질도 대폭 개선됐다. 그러나 부동산으로 인해 경제구조가 심각하게 왜곡되고, 투기가 극성을 부리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도 함께 등장하게 됐다. 

◆ 계획경제 시절 집 걱정은 없었으나 열악했던 주거환경 

-복지주택 공급, 화장실·주방 공동 사용 
-덩샤오핑, 중국 부동산 산업 개혁 적극적
-1980년대 중반 분양주택 개념 도입
-1993년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 첫 등장

1980년대 복지주택의 모습. 개별 주방이 없는 구조여서 모든 가구가 좁은 복도에 주방을 설치해 사용하고 있다. <사진=바이두>

중국인민공화국 수립 당시 중국 국민들은 열악한 주거 환경에 노출돼있었다. 잇단 내전으로 대부분의 주택이 훼손됐지만, 당시 산업화 수준으로는 단기간에 대량의 주택 건설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족한 주택 공급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초기 중국 공산당 정부는 개인의 주택 임대를 장려하기도 했다.

정권이 안정되면서 중국 정부는 주택 문제 해결에 나섰다. 정부가 자금을 제공하고, 단위(單位)로 불리는 기관 혹은 기업이 주택을 짓고, 분배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이를 '복지주택(福利房)'이라고 부른다.

회사는 직원의 근무 기간, 가족 단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집을 분배했다. 그러나 초기에 지어진 복지주택은 매우 좁았고, 편의 시설도 부족했다. 1960~70년대 중국 가구 당 평균 주택 면적은 10평(약 30제곱미터)이 되지 않았다. 집 내부에 방 구분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독립된 화장실과 주방도 없었다. 

30여년 전 직장에서 신혼집을 분배 받은 쉬(徐)씨는 "집 크기가 20제곱미터도 채 안됐다. 침대, 탁자, 옷장 하나씩만 넣어도 집이 꽉 찼다. 화장실은 공용으로 사용했고, 밥을 짓는 것은 좁은 복도에서 해결해야 했다"라고 회상했다. 

정부 차원에서 주택 공급에 직접 나섰지만, 부동산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미비했다. 1978년 중국 고정자산투자에서 주택 건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미안이었다. 

주택 환경 개선과 주택 제도 보완의 필요성을 처음 제시한 것은 덩샤오핑(鄧小平)이었다. 1978년 9월 전국 도시주택건설 회의를 통해 덩 전 주석의 의중이 하달됐고, 개인 주택 건설 허용·관민 주택 공동 건설·할부 구매 등의 새로운 제도 도입이 거론됐다.

이를 계기로 '주택'에 대한 중앙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비생산성 건설로 분류됐던 주택을 경제 발전과 민생 개선의 중요 사업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주택 건설 계획을 대폭 확대해, 1982년 6차 5개년 개발계획(6·5계획)에서  5년 내 3억1000 제곱미터 건설 목표가 제시됐다. 7·5 계획 기간에는 목표치가 6억5000만 제곱미터로 커졌고, 8·5계획 기간에는 12억 제곱미터로 다시 확대됐다. 

1984년에는 정부 공작보고에 처음으로 '주택 상품화 시범 계획'이 언급되며, 부동산 산업의 싹이 트게 됐다. 부동산을 시장에서 매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것. 이후 상품방, 즉 민간이 건설하여 판매하는 분양주택이 탄생하게 됐다. 토지를 공공 자산으로 간주하는 제도 아래서 상품방은 매매가 가능하지만 소유권은 인정되지 않으며, 사용 기한은 40·50·70년으로 제한된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토지개혁도 빠르게 진행됐다. 1987년 12월 선전에서 홍콩의 제도를 도입한 토지사용권 경매가 첫 시행됐다. 중국 공산당 정권 수립 후 이뤄진 최초의 경매였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홍콩 토지 측량사협회는 영국에서 주문 제작한 경매 낙찰 망치를 선전에 선물했다.  

1990년대 들어서 주택제도 개혁에 더욱 속도가 붙었다.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가 일으킨 개혁 열풍을 타고 중국 부동산 시장에도 개혁의 물결이 거세게 일었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이 단시간에 과열되자 중국 정부가 조치에 나섰다. 1993년 6월 23일 국무원은 부동산 회사의 시장진출과 은행 자금의 부동산 시장 투입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중국 부동산 시장 역사상 첫 번째 투기과열 억제 정책으로 불린다. 

 ◆ 주택공급 중단, 분양주택 시대 도래 후 부동산 비약적 발전 

-1998년 하반기부터 복지주택 공급 중단, 주택시장 상품경제 개념 확산 
-중국 건국 70년 동안 중국인 1인당 거주 면적 10배 증가

중국 부동산 산업과 시장에 획기적인 변화가 찾아온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1997년 금융위기가 아시아를 휩쓸자, 경제 성장 돌파구 마련이 시급했던 중국 정부가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가장 획기적인 제도 변화는 복지주택 공급 중단이었다. 계획경제의 대표적인 잔재였던 복지주택 제도 철폐는 중국 주거환경과 경제산업 구조를 뒤엎는 역사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이후 중국 부동산 시장에 자유경제 이념이 빠르게 침투했고, 부동산 산업과 시장 규모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됐다. 중국 주택 시장은 '복지방' 시대를 거쳐 '상품방(商品房 분양주택)'의 시대로 진입, 주택의 면적과 품질도 갈수록 개선됐다.

개혁개방 정책의 큰 틀에서 주택시장의 시장경제화는 필연적이었다. 복지주택으로 살집에 대한 큰 걱정은 없었지만, 이 제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주거환경 개선에 대한 중국인들의 갈망을 채워주기엔 한계가 있었다. 공평성에 대한 불만도 무시할 수 없는 사회문제였다. 같은 조건인데도 동료가 나보다 좋고 큰 집을 분배받았다는 불평이 사업장마다 터져나왔다. 

1949년 4.5제곱미터에 불과했던 중국인 1인당 거주 면적은 1998년 주택제도 전면적 개혁 당시 17제곱미터로 증가했다. 2016년에는 40.8제곱미터로 70년 만에 10배 가까이 확대됐다.

◆ 중국인의 부동산 애착은 언제부터, 부동산 투기 열풍 역사 

-1차 투기 열풍: 1980년 대 말 하이난다오
-2차 투기 열풍: 2003년 본격적인 투기세력 형성
-3차 투기 광풍: 2008년 4조위안 정책으로 부동산 기형적 팽창
-4차 투기 열풍: 2015년 경기 경착륙 방어 위해 정부가 나서

부동산 제도 전면 개혁과 주택 산업 발전은 중국 경제성장에 큰 밑거름이 됐다. 국민들의 삶의 질도 대폭 향상됐다. 그러나 유별난 중국인의 '내 집'에 대한 애착과 자산증식에 대한 열망으로 부동산 투기가 극성을 부리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 정부도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원칙을 강조하며 투기 억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앙 정부의 대대적인 투기 근절 기조에 중국 부동산 시장이 다소 침체 양상을 보이고는 있지만, 시중 유동성이 늘어나는 조짐이 나타나면 대도시 부동산이 어김없이 들썩이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 부동산 시장 변천사에 있어 뚜렷한 투기 열풍이 나타난 것은 모두 네 차례다.

첫 번째 투기 열풍은 1980년 말부터 90년대 초 하이난다오에서 발생했다. 1988년 8월 하이난다오가 광둥성에서 분리, 31번째 성급 행정구로 승격되면서 투기 광풍이 현지를 덮쳤다. 총 인구 160만 명의 하이난다오에 2만 개가 넘는 부동산 회사가 진출했다. 하이난의 상품방(분양주택) 가격은 3년 만에 400%가 넘게 올랐다.

부동산 투기 사태가 심각해지자 주룽지 당시 총리가 특단의 조치에 나섰다, 부동산 기업의 시장 진출과 은행 자금의 부동산 투입을 중단했다. 이 영향으로 하이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지역 경제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두 번째 부동산 투기는 2003년에 시작됐다. 당시 중국 정부가 부동산을 중국 경제의 지주산업으로 간주, 관련 산업 지원에 나서면서 부동산 시장과 업계가 빠르게 성장했다. 실제로 당시 부동산 시장 성장으로 중국 경제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고, 향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는 부동산 투기 세력이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세 번째 부동산 투기 광풍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중국 정부의 4조 위안 경기 부양정책 결과로 불어닥쳤다.

2007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전 세계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다.중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8년 선전 일부 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2007년 대비 50%나 하락했다.

부동산 시장 급랭으로 경제성장 둔화를 우려한 중국 정부가 대대적인 경기 부양에 나섰다. 후진타오 전 주석 시절 원자바오 총리 주도로 4조 위안 규모의 초대형 부양책을 전개,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교적 순조롭게 극복할 수 있게됐다.

그러나 이후 중국 경제는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막대한 규모로 풀린 자금이 기업 등 실물경제 주체보다는 부동산 시장에 더욱 많이 유입됐고,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 과정에서 중국 경제 산업 구조가 심각하게 왜곡되고, 그 영향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 부동산 열풍은 2015년 발생했다. 이때는 중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나섰다. 2003년 이후 중국 경제의 부동산 산업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졌고, 부동산 시장 침체가 경제성장 둔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형성됐다. 경기 경착륙을 우려한 중국 정부가 부동산 활성화에 착수했고, 시장이 빠르게 반응하면서 다시 투기 열풍이 확산됐다.

그해 인민은행이 부동산 활성화를 위해 한 해 동안 5차례 금리를 낮추면서 중국 금리가 역대 최저점까지 내려갔다.

js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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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참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 매우 높다"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21일 육군 25사단 지역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고의 원인을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부상 장병의 장구류에서는 TNT 성분과 갈색 계열 이물질이 검출됐다. 폭발하지 않은 채 발견된 1발은 북한군 수지(樹脂)반보병지뢰로 추정된다. 합참 현장조사 태스크포스(T/F)장인 권대원 합참차장(육군 중장)은 28일 저녁 국방부 청사에서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권 차장은 "최종조사 결과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로 판정되면, 군사분계선(MDL) 이남에서 정상적으로 작전하던 우리 장병이 북한군 지뢰에 부상을 당한 것"이라며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고, 합당하고 상응한 조치를 시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종 결과는 유엔군사령부와 평가를 거쳐 발표할 예정이다. 권대원 합참차장(육군 중장)이 28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25사단 지역 DMZ 내 지뢰 폭발 사고'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권 차장은 "국과수 1차 감정에서 TNT 성분과 갈색 계열 이물질이 검출됐고 철제 파편은 없었다"며 "이번 지뢰 폭발 원인은 북한군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사진=국방부 브리핑 화면 캡처]2026.09.29 gomsi@newspim.com ◆폭발 지점 MDL 남쪽 10여m…"철제 파편 없어 아군 지뢰 아냐" = 합참에 따르면, 폭발은 21일 오전 10시 51분쯤 MDL 남쪽 10여m 지점에서 일어났다. 이곳은 북한군이 최근 지뢰를 매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형 변화 지역에서 10여m 떨어진 곳이다. 폭발은 2발이었고, 철수 과정에서 1발을 더 발견했다는 진술을 근거로 원점 일대에 모두 3발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국과수 1차 감정 결과는 이날 오후 4시 4분 합참에 통보됐다. 작전 병력의 피복·장구류와 화약흔 채취 거즈 등 10종을 감정한 결과, 방탄헬멧 1개와 방탄조끼 2개 등 3개 품목에서 TNT 성분과 갈색 계열 이물질이 나왔다. 양진혁 합참 작전부장(육군 소장)은 "주 장약이 TNT인 아군 지뢰는 폭발 시 철제 파편이 다량 발생하고 살상 반경이 20m 이상"이라며 "이번에는 철제 파편이 없고 갈색 이물질만 있으며 살상 반경도 상대적으로 작아 아군 지뢰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합참은 북한군 지뢰로 판단한 근거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해당 지역에는 아군 지뢰 매설 기록이 없는 반면, 인근에서는 2025년 9월 북한군의 지뢰 매설 흔적이 발견됐다. 국과수 1차 감정에서 갈색 이물질이 검출됐고 철제 파편은 나오지 않았다. 1차 폭발 지점에서 1m가량 떨어진 곳에서 갈색의 북한군 수지반보병지뢰를 봤다는 진술도 있었다. 폭발 지점의 화구와 화염 형태, 장병들의 부상 정도, 작전 인원들의 진술 역시 북한군 지뢰를 가리킨다는 것이 합참의 판단이다. 폭발 당시 영상은 확보되지 않았다. 다만 800여m 떨어진 GP의 집음기에 약 58초 간격으로 비슷한 폭발음 두 번이 녹음됐고, 작전 요원들도 "1분 정도 간격이었다"고 같은 진술을 했다. 양진혁 합참 작전부장(육군 소장)이 28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25사단 지역 DMZ 내 지뢰 폭발 사고'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수색로 개척 종료 시점과 1·2차 폭발 당시의 대형(隊形)을 요도로 설명하고 있다. 양 작전부장은 "철수를 준비하던 공병 요원이 왼발을 내딛는 순간 1차 폭발이 일어났고, 쓰러진 요원을 구하던 중 2차 폭발로 수색대대장이 중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사진=국방부 브리핑 화면 캡처] 2026.09.29 gomsi@newspim.com ◆미폭발 1발은 '북한 수지반보병지뢰' 추정…탐지기엔 안 잡혀 = 미폭발 지뢰는 1차 폭발 지점에서 약 1m, 탐지를 마친 수색로 끝에서 5~10㎝ 깊이에 매설돼 있었다. 2차례 폭발 뒤 공병 요원이 무릎을 꿇고 손곡괭이로 땅을 찔러 가며 탈출로를 내던 중 발견했다. 발견한 요원은 "갈색의 네모난 형태에 표면은 매끄러운 플라스틱이고 무늬가 있었다"고 진술했고, 북한군 교리에 나오는 지뢰 사진을 보고는 "대단히 유사하다"고 했다. 주변에서 함께 본 3명의 진술은 '적색', '갈색', '목함지뢰' 등으로 엇갈렸다. 합참 공보실은 이 지뢰를 목함지뢰가 아닌 수지반보병지뢰로 정정했다. 합참 관계자는 "목함지뢰와 형태는 같고 재질만 플라스틱"이라며 "북한이 1969년부터 운용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과수가 검출한 갈색 이물질이 나무인지 플라스틱인지는 아직 구분되지 않았다. 지뢰를 수거할지는 29일 현장에서 유엔사와 협의해 판단한다. 지뢰 3발이 1~2m 간격으로 있었는데도 탐지기가 잡아내지 못한 데 대해 합참 관계자는 "탐지기를 바닥에 최대한 붙여 나갔지만, 수년간 쌓인 잡목 등으로 지뢰가 탐지 성능 깊이 아래에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3발 모두 매설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폭발 1발은 매설로 추정되지만, 터진 2발은 매설인지 유실인지 아직 특정할 수 없다"고 했다. 28일 현장조사에는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과 25사단 작전부사단장 등 40여 명이 참여해 2차 폭발 지점 2m 앞까지 접근했다. 1차 폭발 지점은 여기서 2m 더 떨어져 있다. 조사단은 작전 병력의 군장과 방탄헬멧, 지뢰화를 확보하고 웅덩이 형태의 화구 2곳을 육안으로 확인했다. 목격 진술이 나온 지뢰 추정 물체와 잔해물까지는 가지 못했다. 합동조사팀 조사도 시간 관계상 진행하지 못해 29일 다시 들어간다. 지난 28일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과 25사단 작전부사단장 등 40여 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이 '25사단 지역 DMZ 내 지뢰 폭발 사고' 원점 일대에 접근해 촬영한 현장 모습이다. 흰색 원 두 개는 지뢰 폭발로 생긴 웅덩이 형태의 화구로, 아래쪽이 2차 폭발, 위쪽이 1차 폭발 지점으로 추정된다. 조사단은 2차 폭발 지점 2m 앞까지 접근했고, 1차 폭발 지점은 거기서 2m 더 떨어져 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2026.09.29 gomsi@newspim.com ◆1차 폭발 뒤 전우 구하다 2차 폭발…GP 집음기에 58초 간격 폭발음 = 이날 합참은 사고 경위도 처음으로 자세히 공개했다. 이번 작전은 북한군의 지뢰 매설 추정 지역을 유엔사와 함께 조사하기 위해 새 수색로를 여는 작전이었다. 수색대대장 등 18명은 GOP 철책에서 소형 전술차량과 산악 바이크로 추진철책 소통문까지 이동한 뒤, 기존 수색로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 이어 MDL 방향으로 수십 년간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수풀 지대를 공병 요원이 앞장서 탐지와 예초를 번갈아 하며 약 200m 전진했다. 18명 가운데 9명은 탐지조·지휘조·작전지원조로 앞에 섰고, 나머지 9명은 20~100여m 뒤에서 통신, 후방 경계, 의무 지원을 맡았다. MDL에 근접했다고 판단한 대대장이 철수를 결심했고, 철수를 준비하던 공병 요원이 왼발을 내딛는 순간 1차 폭발이 일어났다. 주변 3명이 동시에 쓰러졌고, 수색 요원이 화구에 빠진 요원을 끌어내던 중 2차 폭발이 이어졌다. "괜찮아?"라고 외치며 달려가던 대대장이 쓰러졌다. 대대장은 왼쪽 발목에 심한 부상을, 오른쪽 허벅지 등에 파편상을 입었다. 서 있던 정보참모는 얼굴 등에 파편상을 입었고, 1m 옆에 웅크리고 있던 수색 요원은 다치지 않았다. 지난 21일 육군 25사단 지역 DMZ 지뢰 폭발 사고 직후, 메디온 의무후송헬기에서 하강한 응급구조사가 중상을 입은 수색대대장을 호이스트에 결속하고 있다. 장병들은 폭발 직후 지혈 조치를 한 뒤 수색대대장을 2인 1조로 안고 옮기다가 들것으로 교대해 가며 약 200m 떨어진 호이스트 지점까지 후송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2026.09.29 gomsi@newspim.com GOP 대대는 오전 10시 59분 의무사령부 의료종합상황센터에 지원을 요청했다. 메디온 의무후송헬기 3대가 차례로 출동했다. 합참의 요청에 유엔사는 11시 38분 DMZ 진입을 승인했고, 헬기는 11시 40분쯤 진입했다. 장병들은 대대장을 2인 1조로 안고 옮기다가 들것으로 교대해 가며 약 200m 떨어진 호이스트 지점까지 후송했다. 대대장과 공병 중사는 호이스트로 각각 헬기에 올라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고, 나머지 인원도 모두 헬기 2대로 후송돼 정밀검진을 받았다. 18명 중 15명은 퇴원했고 중상자 2명과 경상자 1명은 입원 중이다. 대대장의 지뢰 덧신 착용 여부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일부는 착용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면서도 "조사 중인 사안이라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대장은 중환자실에 있어 아직 면담하지 못했다. 지난 21일 육군 25사단 지역 DMZ 지뢰 폭발 사고로 중상을 입은 수색대대장이 호이스트에 결속된 채 메디온 의무후송헬기로 끌어올려지고 있다(흰색 원). 수색대대장은 첫 번째 헬기에, 부상한 공병 중사는 두 번째 헬기에 태워져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다. 현장에 하강한 응급구조사는 "수색 요원들의 신속한 응급처치가 출혈을 최소화해 더 큰 피해를 막았다"고 진술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2026.09.29 gomsi@newspim.com ◆"고의 지연 없었다"…매설 시점·고의성 판단은 유보 = 현장조사 지연 논란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축소·은폐, 북한 눈치 보기, 상부 지시 같은 의혹은 일절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현장 안내를 맡을 작전 병력이 모두 입원해 있었고, 1군단장이 직무배제된 상황이었다는 설명이다. 22일 합참의장 주관 상황평가에서 군단장 직무대리가 29일 투입을 건의했고, 의장은 이를 승인하면서 앞당길 방안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25일 의장이 25사단을 방문했을 때 직무대리가 "제한 사항이 해소돼 더 일찍 들어갈 수 있다"고 건의해 일정이 27일로 당겨졌다고 합참은 밝혔다. 안내를 맡은 수색중대장, 공병중대장, 공병 중사 3명은 23일 퇴원했다. MDL에서 10여m까지 접근한 경위도 논란이다. 합참 관계자는 "최초 계획 경로의 개척이 어려워 대대장이 더 양호한 지역으로 판단한 곳으로 갔다는 중대장 진술이 있지만, 대대장에게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사고 초기 '수십m 떨어진 곳'이라고 알린 데 대해서는 "통신 난청 지역이라 위치를 찍은 지점과 차이가 있었고 GPS 오차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족보행로봇 등 무인장비는 시험해 봤지만 덩굴과 급경사 때문에 기동이 어려워 투입하지 않았다. 북한군의 지형 변화는 지난해 9월 위성영상으로 처음 식별됐다. 작업 시기는 지난해 8~11월로 추정되지만, 북한군 병력의 활동이 직접 포착되지는 않았다. 매설 시점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당시 표시한 흔적보다 바깥에 있어 과거에 매설한 지뢰일 가능성도 있다"며 "양면성이 있다"고 했다. 고의성 판단도 유보했다. 합참 관계자는 "2015년 목함지뢰 도발은 우리 장병이 매일 드나드는 통문 앞뒤에 심은 것이어서 의도가 명확했다"며 "이번 지역은 50여 년간 사실상 가지 않은 곳이라 아군 병력을 노렸다고 보기에는 제한이 있다"고 말했다. 2015년 8월 10일 북한군 목함지뢰 도발 현장인 경기 파주 서부전선 GP 추진철책 통문에서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취재하고 있다. 당시 한·유엔사 합동조사단은 현장에서 철제 용수철·공이 등 잔해물 43점을 수거해 북한군 목함지뢰 3발이 의도적으로 매설된 것으로 결론 냈다. 폭발 지점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는 경사지라 떠내려온 지뢰일 가능성도 배제됐다. [사진= 국방일보] 2026.09.29 gomsi@newspim.com MDL에 대해서도 "1292개 표지판이 촘촘히 있는 것이 아니어서 남북 간, 유엔사와도 인식 차이가 있다"며 "북한이 자기 땅으로 여겨 매설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군은 유엔사와 MDL 기준선을 일치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군은 사고 이후 DMZ 2단계 수색로 개척 작전을 잠정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평가하고 있다. 대응 수위에 대해 양 작전부장은 "최종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합참은 군사적으로, 국방부는 정책적으로 모든 옵션을 올려놓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gomsi@newspim.com 2026-09-2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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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공개] 靑 신규 참모 6명 재산공개 [서울=뉴스핌] 김미경 기자 = 올해 6월 21일 임명된 청와대 신규 참모 가운데 박지영 사법제도비서관이 92억여 원을 신고해 재산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본인·배우자 명의로 주택 2채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는 김경자 사회수석비서관 1명이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9일 관보에 게재한 9월 수시 재산등록사항을 살펴보면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 신규 재산공개 대상자 6명 중 박 비서관이 92억1772만 원으로 재산이 가장 많았다. 이어 성기홍 홍보소통수석비서관이 86억6347만 원, 한찬식 민정수석비서관이 58억6067만 원으로 뒤를 이었다. 강건작 국가안보실 제1차장은 10억4150만 원, 김태근 자치발전비서관은 5억5398만 원, 김경자 수석은 5억748만 원을 신고했다. 청와대 전경 [사진=뉴스핌 DB] ◆ 김경자 수석, 성남 태평동에 아파트·다가구주택 보유 본인과 배우자가 소유권을 가진 주택을 기준으로 다주택 여부를 판단하면 신규 참모 중 다주택자는 김 수석뿐이다. 김 수석은 경기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선경태평아파트(35.51㎡·1억6700만 원)와 같은 지역의 다가구주택(59.91㎡·2억2200만 원)을 본인 명의로 신고했다. 두 주택에는 임대보증금 채무가 각각 1000만 원, 1466만 원 잡혀 있다. 김 수석은 예금 8474만원을 신고했다. 임대보증금과 은행 대출을 합친 채무는 1억7502만원이었다. ◆ 박지영 비서관, 반포자이 부부 공동명의…임대보증금 29억5000만원 박 비서관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아파트(165.45㎡)를 본인(132.39㎡)과 배우자(33.06㎡) 지분으로 나눠 신고했다. 신고가액은 본인 지분 36억6400만 원, 배우자 지분 9억1600만 원으로 모두 45억8000만 원이다. 이 아파트에 걸린 임대보증금 29억5000만 원은 채무로 올렸다. 박 비서관은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센트럴파크 아파트 전세권(114.50㎡·21억3000만 원)도 신고했다. 배우자는 전북 군산·김제·완주 일대 밭과 임야 지분 1억2779만 원어치를 보유했다. 금융자산 규모도 컸다. 박 비서관 일가의 예금은 28억5785만 원, 증권은 24억440만 원이었다. 박 비서관 본인은 한국전력 3853주, 한화오션 1371주, 삼성전자 422주 등 상장주식 8억9937만 원어치를 신고했다. 배우자는 LS 일렉트릭 1321주, 이수페타시스 1750주, 한국전력 5030주 등 13억1834만 원어치를 보유했다. ◆ 성기홍 수석, 대치우성 부부 공동 39억 성 수석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치우성 아파트(125.17㎡)를 배우자와 절반씩 나눠 보유했다. 지분별 신고가액은 각 19억5000만 원으로, 모두 39억 원이다. 본인·배우자 기준으로는 1주택자다. 성 수석 일가의 예금은 14억1605만 원, 증권은 13억6567만 원으로 집계됐다. 성 수석 본인은 삼성전자 2194주와 SK하이닉스 6주, 달바글로벌 192주 등 상장주식 8억3159만 원어치를 신고했다. 연합인포맥스 비상장주식 248주(4162만 원)도 갖고 있다. 배우자는 미국 국채 등 채권과 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브로드컴 등 해외 주식을 보유했다. 성 수석은 비트코인 0.74개(7187만 원)도 신고했다.  ◆ 한찬식 수석, 서초 아파트분양권·강남 아파트 전세권 보유…채무 10억 한찬식 수석은 소유권을 가진 주택 없이 서울 서초구 신반포로 '디에이치 클래스트' 아파트 분양권(130.96㎡·25억5665만 원)을 신고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현대2차아파트 전세권(165.08㎡·12억 원)도 함께 올렸다. 한 수석의 배우자는 경기 부천시 소사구 괴안동 근린생활시설 지분(14억6559만 원)과 경남 산청군 임야(1억4410만 원)를 보유했다. 장남·장녀·차녀는 경기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임야 지분을 각각 1307만 원어치씩 신고했다. 한 수석은 농협은행 9억 원을 포함해 금융채무 9억5178만 원을 신고했다. 가족 전체 채무는 10억350만 원이었다. 한 수석 본인은 반얀트리클럽 앤 스파 서울 회원권(1억5000만 원)을, 배우자는 서울클럽 회원권(5000만 원)을 보유했다. ◆ 강건작 1차장·김태근 비서관, 1주택 강 1차장은 서울 은평구 불광동 메트로타워 아파트(104.49㎡)를 배우자와 공동명의로 보유했다. 지분 가액을 합치면 8억9000만 원이다. 강 1차장은 예금 2억340만 원, 채무 7155만 원을 신고했다. 김 비서관은 울산 중구 태화동 일신아파트(59.84㎡·1억1300만 원) 1채를 본인 명의로 신고했다. 김 비서관 일가는 예금 2억2180만 원, 증권 2억1887만 원을 보유했다. 배우자는 로킷헬스케어 1260주와 삼성전자 200주, 삼양식품 26주 등을 신고했다. 박 비서관은 모친, 김 비서관과 강 1차장은 장남에 대해 독립생계유지 등을 이유로 재산 고지를 거부했다. the13ook@newspim.com 2026-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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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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