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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중독자의 고백⑤] "18살 첫 구속..청춘도 아내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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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살 가출 후 만난 동네 형 '필로폰' 권유에 투약했다가 중독
필로폰·대마초 손 대다 18살 첫 구속..아버지가 강제로 정신병원 입원
4번째 구속에 아이들 버려두고 집 나간 아내..후회만 남은 과거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마약 안전지대인가? 아닙니다. 마약 청정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이 최근 증명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한 해 마약사범만 1만2000명, 많게는 1만6000명이 검거되고 있는 마약 오염국입니다. 최근 재벌가를 비롯해 연예인들의 마약투약 사실이 줄줄이 적발되면서 모방범죄도 우려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문제는 마약의 위험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독증상’이라는 추상적인 부작용만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마약의 실상과 위험은 무엇일까? 뉴스핌은 마약중독자와 그 가족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직접 쓴 수기를 입수해 연중기획으로 보도합니다. 건강한 삶과 가정을 마약이 어떻게 파괴하는지, 마약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짚어봅니다.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필로폰 투약 혐의로 생애 처음 구속된 그 날. 박형욱(가명)씨는 고작 18살이었다. 바닷가에서 자란 박 씨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친척들은 대대로 지역 유지였고 아버지도 동네에서 손 꼽힐 정도로 돈이 많았다. 화목했던 박 씨의 가정에 금이 간 건 아버지가 국회의원에 출마하면서부터였다. 어렴풋한 기억에도 정치에는 돈이 많이 들었고, 그럴수록 어머니와 아버지의 다툼은 잦아졌다.

전 재산을 쏟아부은 선거에서 아버지는 낙선했다. 전업주부였던 어머니는 생계 전선으로 뛰어들었고 야망에 넘치던 아버지는 오로지 술병만 들었다. 박 씨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런 아버지와 자주 갈등을 빚었다. 통제하려는 아버지와 반항하려는 박 씨는 줄곧 평행선만 달렸다. 박 씨는 16살, 결국 집을 뛰쳐 나왔다.

관광지였던 동네는 밤만 되면 화려한 네온사인에 휩싸였다. 박 씨에게 밤거리는 호기심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박 씨는 가출한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 밤거리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유흥가에서 일하던 동네 형들은 그런 박 씨와 친구들에게 술과 담배, 그리고 마약을 건네줬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가 제작한 '마약퇴치의 날' 축하 영상. [캡쳐=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마약을 처음 접한 건 평소 알고 지내던 형을 통해서다. 나이는 한참 위였지만,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친형처럼 박 씨를 돌봐주고 자신의 집에 함께 살도록 해줬다. 박 씨는 형이 집에서 알 수 없는 말을 하거나 이상행동을 하는 모습을 몇 번 목격했다. 그때마다 집 안 구석구석에는 피 묻은 주사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형은 며칠씩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았다. 갈수록 예민해졌고 또 난폭해지기까지 했다. 그런 형은 어느 날, 박 씨에게 필로폰이 든 주사기를 건넸다. 박 씨도 처음은 호기심이었다. 호기심에 투약한 마약은 점점 중독으로 변해갔다. 필로폰뿐만 아니라 대마초에도 손을 댔다. 박 씨는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마약을 나눠주고 서로의 팔뚝에 주사를 놓아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 씨 주변에는 온통 마약 중독자뿐이었다.

박 씨에게 처음 마약을 권유했던 형은 결국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다. 경찰에 박 씨와 친구들의 이름을 대지는 않았다. 박 씨는 다른 경로를 통해 마약을 구했고 그만큼 몸도 망가지기 시작했다. 약 기운이 떨어지면 고열 증세가 나타나면서 심하면 정신을 잃기도 했다. 악순환처럼 투약하는 횟수와 양은 점점 늘어났다. 마약을 구할 돈이 없을 때는, 행인들을 붙잡고 돈을 뺏거나 도둑질을 했다. 심지어는 가족들이 없는 틈에 집에 들어가 어머니의 패물을 훔쳐 마약을 사기도 했다.

경찰에 처음 붙잡힌 건 필로폰이 아닌 대마초 때문이었다. 박 씨는 친구와 함께 대마초를 흡연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지만, 나이가 어리고 초범이라는 점이 참작돼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이 소식을 들은 부모님은 박 씨를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박 씨는 가출한 이후 처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퇴학 처리돼 학교도 갈 수 없는 상태였다. 박 씨는 결국 자신의 둥지인 ‘밤거리’로 다시 나갔다.

박 씨는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동갑내기 친구였고 곧 동거를 시작하며 서로 의지하고 보살폈다. 아내는 호프집 서빙을, 박 씨는 바닷가에서 동네 선배가 하는 일을 거들며 생활비를 벌었다. 그 사이에도 박 씨는 매일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며 필로폰을 투약하고 대마초를 피웠다. 어렵게 모은 돈은 모조리 마약을 사는 데 탕진했다. 박 씨는 필로폰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는 상태까지 오게 됐다. 그렇게 박 씨는 18살이라는 나이에 처음으로 구속됐다.

박 씨는 벌금형으로 풀려났지만, 구치소에서 더 많은 마약 전과자들을 사귀게 됐다. 이미 주변에는 마약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지경이었다. 박 씨는 그 중 마약 판매책인 한 선배와 특별히 친하게 지냈다. 박 씨는 필로폰을 얻기 위해 선배가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았다. 선배에게서 받은 필로폰을 팔아 돈을 만지기도 했다.

처음 필로폰을 건네줬던 동네 형처럼 박 씨는 자신도 모르는 새 변해가고 있었다. 성격은 예민해졌고 작은 일에도 화를 참지 못했다. 며칠 동안 잠을 자지 않았다가 또 3일 동안 곯아떨어지는 생활이 반복됐다. 아무런 음식도 삼킬 수 없었고 태양에 눈이 부셔 낮에는 바깥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수시로 주사 바늘을 찔러 넣었던 팔뚝에는 항상 멍 자국이 남아있었다. 박 씨는 때로 환청을 듣거나 환시를 보고 자지러지게 놀라는 이상행동도 보였다. 늦은 밤에만 활동했던 박 씨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몰골로 ‘밤거리’를 떠돌아다녔다. 아내는 그런 박 씨에게 화도 내보고 눈물로 호소해봤지만, 모두 허사였다. 박 씨의 머릿속에는 오직 필로폰과 대마초뿐이었다.

아내는 결국 박 씨의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아버지는 박 씨를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심각한 금단증상에 시달린 박 씨는 약 기운이 떨어지자 극심한 두통과 발열, 오한 등의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입술이 바싹 바싹 마르면서 입술 곳곳이 찢어졌다. 또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에 사정없이 긁다 보니 몸은 항상 피투성이였다. 때로는 벽에 머리를 박으며 자해했고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다.

박 씨는 어렵게 퇴원했지만, 그가 가장 먼저 찾은 건 역시 마약이었다. 전화 한 통이면 필로폰을 구할 수 있었고 옛 친구들도 여전히 마약 중독자였기 때문이다. 병원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박 씨는 다시 구속됐지만, 아슬아슬하게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그날 박 씨는 아버지와 심하게 다투고 다시 집을 나갔다. 어머니는 그런 박 씨를 찾겠다며 ‘밤거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다. 심한 충격에 뇌가 손상됐고 급히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박 씨가 병원을 찾았지만, 수술을 마친 어머니는 박 씨도 알아보지 못했다. 거듭되는 수술에 다행히 어머니의 병세가 호전되면서 2년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박 씨는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사고를 당한 사실에 충격을 받고 ‘단약(마약을 끊는 일)’을 결심하게 된다.

박 씨는 삼촌의 소개로 한 페인트 제조 공장에 취업했다.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잠시, 박 씨는 공장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작은 일에도 화를 냈고 윗사람들과 수시로 싸움을 했다. 전형적인 금단증상이었다. 박 씨는 결국 공장에서 쫓겨나다시피 다시 밤거리로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 씨의 아내는 첫 아이를 임신했다. 아내는 박 씨가 마약을 끊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자신의 아이를 위해 단약에 성공하고 남들처럼 평범한 가장, 아빠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었다. 그럼에도 박 씨의 생활을 변하지 않았다. 오로지 약을 찾아다니는 생활의 반복이었고 결국 다시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마약 중독자인 남편을 대신해 아내는 젖먹이 아기를 살리기 위해 궂은일을 해야만 했다. 박 씨 역시 수감 생활 동안 크게 후회했다. 아내에게도 그리고 아들에게도 죄스러웠다. 박 씨는 반드시 단약에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출소 후 박 씨는 평범한 일자리를 찾아 헤맸지만, 쉽지 않았다. 박 씨는 이미 마약 중독자로 동네에 소문이 파다했고 별다른 기술조차 없는 상태였다. 결국 박 씨가 선택한 건 다시 ‘마약’이었다.

박 씨는 교도소에서 알게 된 동료를 통해 필로폰을 구했다. 자신이 투약하고, 남은 건 모조리 팔아 돈을 마련했다. 아내로서는 달갑지 않은 생활비였지만, 아들을 위해 필요한 돈이었다. 그 사이 박 씨와 아내는 둘째를 갖게 됐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된 박 씨는 ‘밤거리’ 생활을 청산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약의 굴레에 갇힌 박 씨는 끝내 아내와 아이들을 뒤로하고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박 씨는 경찰의 수사를 피해 여관을 전전하던 중 가장 친했던 동네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친구는 필로폰을 투약한 후 끔찍한 선택을 했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까지 만나지 못하면서 도주하던 박 씨는 이 사건까지 겹치면서 극심한 우울증을 앓게 된다.

경찰의 수사가 좁혀오면서 박 씨의 도주극도 끝이 났다. 실형을 선고받은 박 씨는 출소 후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다시 마약에 손대고 또 다시 구속된다. 18살 처음 구속된 이후 4번째 구속이었다. 필로폰 투약·알선·소지·판매·대마초 흡연·소지 등 혐의였다.

10년 넘게 박 씨의 곁을 지켰던 아내는 이날 아이들을 버려둔 채 홀로 사라졌다. 교도소에서 이 사실을 접한 박 씨는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거울을 볼 수 없었다. 박 씨는 교도소에서 가족들 생각에 수없이 울음을 삼켰다. 과거에 대한 후회, 아내에 대한 미안함, 아이들 걱정에 박 씨는 스스로와 ‘밤거리’를 원망했다. 다시는 마약에 손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제 출소를 기다리는 박 씨의 꿈은 소박하다. “아빠와 함께 목욕탕에 가는 친구들이 가장 부럽다”는 아들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일. TV에 나오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직장에서 성실히 일하며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일. 칠순을 바라보는 부모님을 위해 동네가 떠들썩한 잔치를 치러주는 일. 끝으로 마약 중독자인 남편의 뒷바라지만 했던 아내의 용서를 구하는 일. 평생을 밤거리에서 마약에 취해 살았던 박 씨에게는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박 씨는 35년간의 마약 중독자 생활을 청산하고 따뜻한 가정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재활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조금 늦었지만, 가족의 울타리가 되기 위해 박 씨는 마약의 굴레를 벗으려 지금도 몸부림치고 있다.

 ※ 마약에 중독됐을 경우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를 통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국립부곡병원 △시립은평병원 △중독재활센터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imbo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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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다시 청와대…낙수효과 기대 [서울=뉴스핌] 조준경 기자 = 지난 22일부터 언론 브리핑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진행되면서, 용산 대통령실 시대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달 말부터 청와대에서 집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다시 청와대 시대가 오는 것이다.  2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부근의 효자동과 통의동 인근 상인들과 주민들을 방문해 대통령실 청와대 복귀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기대하는 이들이 있는 한편,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다만 기자와 취재원들의 만남이 무작위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전체 상인과 주민들의 입장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서울=뉴스핌] 조준경 기자 = 23일 효자로 남단에서 청와대 방향을 바라본 모습. 우측으로 경복궁 영추문이 눈에 들어온다. 2025.12.23 calebcao@newspim.com ◆ "낙수 효과로 장사 잘 될 것 기대 중" 이날 오전 자하문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50대 여성 A씨는 대통령실 청와대 복귀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통령실이 청와대로 돌아왔다니까 기대하는게 크다"면서 "아무래도 직원들도 돌아오고 하니 매출이 늘어나지 않겠어요?"라고 예측했다. A씨는 장사를 시작한지 3개월 가량 지났다고 밝혔다. 점심 무렵인 오전 11시쯤 효자동에서 5년째 음식 장사 중인 김광재 청기와집 사장(62)은 대통령실 용산 이전(移轉) 전후를 설명했다. 김 사장은 "용산으로 가기 전에는 점심 장사로만 60~70명 정도를 받았고, 청와대 외곽을 경비서는 경찰 인력들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면서 "그러다가 청와대를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고 나서는 5~6개월간 관광객이 몰려들며 300명씩 받는 '특수'를 누렸다"고 얘기했다. 그는 "이후에 거의 다 관람하고 나서 청와대 신비감이 떨어졌고 2년 가까이 장사가 엄청 안됐다"면서 "용산으로 가기 전에 비하면 반 토막 정도 떨어진 것 같다. 그래서 다시 대통령실이 돌아온다니까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김 사장과 대화하는 중간에 청와대 외곽 경비를 담당하는 경찰 직원 7명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김 사장이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손님들의 자리 안내를 한 후 다시 돌아와 인터뷰를 계속했다. "지금도 사람들이 들어오잖아요. 저분들은 기동대인데, 낙수효과지. 근무하는 인원이 몇 천은 될 테니까. 그 안에서 식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밖으로 나와서 먹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도시락을 맞출 수도 있으니까 우리에겐 기회지." 집회나 시위에 대한 걱정이 없냐는 질문에 김 사장은 "시위 걱정? 시위대가 온다고 식당을 부수진 않으니까, 왔으면 밥이라도 한 그릇 먹겠지 우리 손해는 아닐 겁니다"라면서도 "다만 주민들은 피해를 볼 수도 있겠네요. 막 욕하고 시끄럽게 떠들고 할 테니까"라고 내다봤다. ◆ "별 체감 안 되는데" 시큰둥한 반응...임대료 증가 걱정도 효자동에서 남쪽에 인접한 경복궁 옆 통의동 골목에서 25년째 한식당을 하고 있는 60대 여성 B씨는 "솔직히 (장사가 잘 되는)체감이 아직은 안가요. 뭐 돌아오면 나아지겠지?"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어 "우리 집은 경찰이나 직원들이 오는 집은 아니에요. 그 전에도 그렇게 많이 오지 않았고. 주로 경복궁에 놀러 온 사람들이 찾아와요"라며 "(이전에 청와대 사람들이)오더라도 그 사람들은 왜 이렇게 룸을 찾는지, 음식 맛보러 오는 게 아니라 대화하려고 오는거야. 그래서 대통령실 돌아왔다고 해도 그냥 그래"라며 얼버무렸다. 경복궁과 통의동을 가르는 효자로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76세 남성 C씨도 대통령실 복귀가 자신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바람에 상권 변화에 따른 불안정성만 커졌다고 지적했다. "원래 12월은 비수기라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체감이 안 가는 걸 수도 있는데, 여기서 15년 장사를 했는데, 그 전에도 대통령실 직원들이나 경찰들이 우리 가게에는 오지 않았어요." C씨의 가게는 커피콩을 직접 볶는 '로스팅' 전문점이다. 과거 문재인 정권 시절에는 청와대에서 커피콩을 사러 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다수 고객은 경복궁을 찾는 관광객들이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가기 전에 이 안쪽 골목에는 비싼 한식집들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고위 관료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곳이었겠죠. 그런데 용산으로 가버리니까, 그 집들이 다 카페로 바뀌었어요. 옛날엔 이 근방에 카페가 5~6곳이었는데, 올해만 20곳 넘게 생겼어요." C씨의 설명에 따르면 청와대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며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고 한다. C씨의 추측으로는 올해 들어 주변 상점들의 임대차 계약 만료일이 겹쳤는지, 전체적으로 월세가 큰 폭으로 올랐다고 한다. "이 부근 월세가 보통 30평에 500만원을 내는데, 다른 카페들 보면 더 큰 평수겠지만 1000만~1500만원 내는 곳도 있습니다. 근데 보시면 알겠지만 장사가 안돼요. 내 나이에는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월세만 내면 버티지만 다른 곳들은 걱정입니다" 집회와 시위가 늘어나는 것에 대한 질문에는 "시위도 두 종류가 있다"며 "무슨 노조들이 하는 시위는 매출과 관계 하나도 없고 시끄럽지만, 여러 시민단체나 각 개인이 와서 하는 시위는 장사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청와대 옆 무궁화동산에서 만난 산책 중이던 동네 주민 D씨는 "원래 여기가 조용하기도 하고 시끄러운 곳"이라며 "용산으로 갔을 때도 큼지막한 시위는 항상 광화문에서 했기 때문에 별 차이는 못 느꼈다"고 얘기했다. D씨는 "옛날 2008년에 광우병 시위를 크게 할 때는 집에 가는 길도 시위대랑 경찰에 막혀서 불편한 게 많았다"면서 "그런 것만 제외하면 동네 사는 게 나쁘진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 일각에선 대통령실 청와대 복귀와 관련해 수백억원의 혈세가 낭비됐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용산에서 다시 청와대로 옮기는 데 드는 비용이 269억원, 그 자리에 국방부가 다시 들어오는 데 238억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길 때 든 비용 800억원을 합산하면 총 1300억원의 비용이 낭비된 셈이다. calebcao@newspim.com 2025-12-2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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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카드, 19만명 정보 유출 [서울=뉴스핌] 이윤애 기자 = 국내 최대 신용카드사인 신한카드에서 가맹점 대표자 약 19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확인됐다. 신한카드는 해당 사실을 인지한 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신고하고 후속 조치에 착수했다. 신한카드는 23일 가맹점 대표자의 휴대전화번호를 포함한 총 19만2088건의 개인정보가 신규 카드 모집 과정에서 유출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이윤애 기자 = 신한카드 본사 전경[ 사진=신한카드] 2025.06.18 yunyun@newspim.com 유출된 정보는 ▲휴대전화번호 18만1585건 ▲휴대전화번호와 성명 8120건 ▲휴대전화번호·성명·생년·성별 2310건 ▲휴대전화번호·성명·생년월일 73건 등이다. 신한카드는 조사 결과 주민등록번호, 카드번호, 계좌번호 등 민감한 신용정보는 포함되지 않았으며, 가맹점 대표자 정보 외 일반 고객 정보와도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해킹 등 외부 침투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며 조사 결과 일부 내부 직원의 신규 카드 모집을 위한 일탈로 밝혀진 만큼 유출된 정보가 다른 곳으로 추가 확산될 염려도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덧붙였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현재까지 해당 정보로 인한 실제 피해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면서도 "향후 피해가 발생할 경우 적극적으로 보상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한카드는 홈페이지를 통해 사고 사실과 사과문을 게시하고, 가맹점 대표자가 본인의 정보 포함 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조회 페이지를 운영 중이다. 아울러 개별 안내도 병행하고 있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이번 일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객 보호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당 사안이 '목적 외 개인정보 이용'인지, '정보 유출'인지 추가 조사를 통해 확인해야할 필요가 있으나, 적극적인 고객 보호를 위해 '정보 유출'에 준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yunyun@newspim.com 2025-12-2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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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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