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목전인데 인적 드물어
"가격 올렸더니 눈길도 안줘"
물가 폭등에 손님들도 '한숨'
[서울=뉴스핌] 조재완 신정인 기자 = 설 명절을 앞둔 서울 전통시장엔 강추위보다 매서운 소비 한파가 불었다. 고물가 행진 속 경기 침체가 가시화되면서 소비 심리도 꽁꽁 얼어붙었다. 코로나19 겨울 재유행까지 이어지자 시장을 찾는 소비자들이 줄면서 자조 섞인 한숨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서울=뉴스핌] 조재완 기자 =설 명절을 이틀 앞둔 지난 19일 오후 12시경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전통시장 입구.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사람이 없어 을씨러스러운 모습이었다. 2023.01.19 chojw@newspim.com |
◆ 원재료값 폭등에 가격 올렸더니 발길 '뚝'…상인들 '울상'
"명절 대목? 그런게 어디 있어.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어.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값을 올렸는데, 사람들이 아예 안 사가. 다들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졌다니까."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시장에서 한과를 판매하는 이명희 씨(69·가명)는 최근 상권 분위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말을 이어가며 감정이 북받치는 듯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이씨는 진열대에 놓인 한과 상품을 가리키며 "작년 설엔 1만원에 팔았는데, 올해는 1만5000원에 팔고 있다"고 설명했다. 4가지 종류 한과가 각 4개씩 들어있는 상자였다. 그는 "고작 5000원 올렸을 뿐인데 사람들이 너무 비싸다고 한다"며 "다들 5000원이 없어서 물건을 못 산다고 한다"고 하소연했다. 기자가 '일년 새 가격이 50%나 오른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깨와 밀가루, 참기름 등 식재료값이 폭등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1%다. 외환 위기 당시 1998년(7.5%) 이후 24년 만의 최대 상승 폭이다.
가게 한 켠에는 선물용으로 포장된 상품 박스가 잔뜩 쌓여있었다. 이씨는 "큰 기업들이 직원들 선물용으로 대량 구매 해주면 좋을텐데 그런 것도 없다"며 한숨 쉬었다.
이씨 가게 맞은 편에서 각종 죽을 파는 김정순 씨(72·가명)는 매출이 '제로(0)'라고 하소연했다. 김씨를 만난 시각은 오후 12시30분. 두꺼운 점퍼에 목도리와 귀마개로 중무장해 오전 6시부터 장사를 시작했지만 하나도 팔지 못했다고 했다. 김씨는 "익숙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장사가 요즘 왜 안 되는 것 같냐'는 기자 질문에 "요즘 날씨가 너무 추운 데다, 코로나19가 재유행하면서 길에서 음식을 먹고 가려는 사람들이 줄은 것 같다"고 봤다.
같은 시각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은 영등포시장보다 북적였다.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과 끼니를 때우러 나온 이들이 섞여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과일과 채소를 파는 상인들은 쉴새없이 찾아오는 손님들을 상대하며 진열대 물건들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다만 상인들은 하나같이 예년만큼 장사가 안된다고 했다.
각종 반찬거리를 판매하는 이옥연 씨(68)는 "반찬거리와 곶감 등 손님들이 사가는 품목은 지난해와 비슷한데, 뭘 찾든 조금씩 덜 찾는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보다 원재료값은 다 올랐는데 매출은 적다"며 "작년 이맘때와 비교해 매출 20~30%가 줄었다"고 토로했다.
택배 물량도 줄었다고 한다. 이씨는 "대기업들이 온라인시장까지 진출하니 시장들이 다 죽었다"고 했다.
[서울=뉴스핌] 조재완 기자 =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시장에서 한 행인이 한과를 구매하려하자 이명희씨(69·가명)가 응대하고 있다. 2023.01.19 chojw@newspim.com |
◆ 지갑 얇아진 소비자도 '한숨'…"물가 너무 올라 차례상 안 지낼래"
시장에 장을 보러온 이들도 한숨 쉬긴 매한가지였다. 과일과 채소, 생선 등 차례상에 올릴 음식값 가격이 모두 치솟은 탓이다. 가게 매대 앞에 서서 상품을 이리저리 들어 가격을 확인했다가 다시 내려놓는 모습도 종종 목격됐다.
영등포시장에 전을 사러 왔다는 김숙자 씨(67·가명)는 진열대에 놓인 전 모듬 상품을 보고 한참 서 있었다. 상인은 '방금 막 구운 따뜻한 동태전'이라며 김씨에게 구매를 권했지만, 김씨는 "아이들도 먹을 수 있는 전이냐" "전 안에 가시는 없냐" "시식 한번 해보면 안되냐"고 물으며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김씨는 결국 시식만 해본 뒤 물건은 사지 않고 돌아섰다. 김씨에게 '왜 사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기자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작은 전 15개를 1만원에 파는 게 너무하지 않냐"고 했다. 그는 "식구 수가 많아서 한 통으로는 어림도 없다. 여러 통 사자니 너무 비싸다"며 "그냥 며느리들과 전을 직접 부쳐야 할지 고민된다"고 했다.
남대문시장에서 만난 김정화 씨(56)는 지난해보다 차례상 규모를 줄이겠다고 했다. 그는 "차례상을 차릴 계획이지만, 간단하게 차릴 것"이라고 했다. 기자가 연유를 묻자 김씨는 "물가가 너무 비싼 데다, 가족 수도 많지 않아 이전처럼 크게 상을 차리는 것이 의미가 없다"며 "적당히 쉬면서 맛있는 음식을 조금 차리는 게 낫다"고 했다. 김씨가 잡은 차례상 예산은 대략 30만원. 김씨는 "지난해도 이 정도 금액으로 장을 봤는데, 올해는 물가가 많이 올라 조금만 사야할 것 같다"고 했다.
아예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말한 이들도 더러 있었다. 영등포시장을 찾은 김점순 씨(87)는 '차례상 장을 보러 왔냐'는 기자 질문에 "기독교 집안이라 차례를 안 지낸다"며 "오랜만에 가족들이 다 함께 만나니 간단히 나눠 먹을 음식 몇 가지를 사러왔다"고 했다. 그는 "요즘 차례 안 지내는 집들이 많은 것 같다. 물가도 비싸고, 음식 준비하는 것도 힘든데 굳이 고생할 필요 없지 않냐"며 "우리 집은 제사 문화가 없어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에서 한 행인이 장을 보려 진열대 상품을 둘러보고 있다. 2023.01.19 tack@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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