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수은 기은, 중복 대출금액 71조7601억원 달해
[뉴스핌=윤지혜 기자] #수도권에 위치한 인쇄잉크 제조업체 A 중소기업은 2012년 산업은행에서 실시하는 'KDB파이오니어 프로그램' 지원 대상기업으로 선정됐다. KDB파이오니어 프로그램은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중소·벤처기업을 지원하는 제도다. 하지만 A 기업이 누린 정책금융 지원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이미 A 기업은 2010년에 수출입은행의 '히든챔피언' 육성대상 기업으로 선정된 상태였다. A 기업은 수은으로부터 시설자금과 수출자금, 해외투자자금, 수입자금 등을 한꺼번에 일괄 승인해 지원받았다. 결국 기술력과 성장잠재력이 있다는 이유로 수은에서, 첨단기술을 갖췄다는 이유로 산은에서도 지원받으며 정책금융의 혜택을 최대한 누린 것이다. 하지만 A기업은 지난해 5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다. A 기업의 현재 부채 규모는 967억원에 달한다.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간 대출 중복 지원이 정책금융의 3분의 1을 넘기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정책자금 규모에 비해 효과가 불분명해 정책금융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있다.
<자료제공=금융연구원> |
14일 금융연구원이 새누리당 경제혁신특별위원회에 제출한 금융 공기업 개혁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 대기업·중소기업 등이 통합 산은·수은·기은으로부터 받은 대출 200조3926억원 가운데 36%가 중복 대출로 집계됐다.
대기업은 552개사가 52조9492억원(26.4%)을, 중소기업은 2030개사가 18조8109억원(9.4%)을 중복 대출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은·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간 중복 투자도 눈에 띄었다. 939개사가 21조6922억원을 투자받은 가운데 2개 이상의 기관으로부터 중복 투자를 받은 경우는 30개사로 951억원에 달했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연구원은 "현재 다수 정책금융기관간의 협조·조정이 곤란해 업무 중복·시장 마찰이 발생한다"며 "해외자원개발, 창조경제지원, 고령화·양극화 등 시대변화에 신속하고 충분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산은의 중소기업 정책금융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정책금융지원이 일부 우량 집단에만 쏠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례로 산은의 대표 정책금융제도인 온렌딩 대출은 지원 대상기업 가운데 등급이 높은 우량기업에 편중된 모습을 보였다. 온렌딩 대출은 중개금융기관이 기술신용정보 제공기관으로부터 기업의 기술신용정보를 확인해 산은의 장기·저리자금을 전대받아 기업을 지원하는 제도다.
박병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집행된 20조6171억원의 온렌딩 대출 가운데 9~11등급 기업이 40% 지원 받은 반면 6~8등급 중소기업 지원은 60% 에 달했다. 대상 기업은 금감원 표준신용등급 기준 6~11등급에 회사 설립 후 3년 경과에 직전 사업연도 매출실적 10억원 이상인 기업으로, 온렌딩 지원이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높은 우량 기업에만 편중됐다는 지적이다.
구정한·김영도·이시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규모는 크게 증가한 반면 산은은 기은과 달리 중소 기업 지원에 주력하지 않고 있다"면서 "산은이 중소기업 정책금융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산은 관계자는 중복 지원에 대해 "현실적으로 완전히 겹치는 것이 없기는 불가능하다"면서도 "2013년 8월 수립한 정책금융 재정립방안 등을 통해 이런 부분을 재정비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했다.
또한 "기업은행이 중소기업은행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듯 각 은행별로 특화된 부분이 있다"면서 "산은은 중견기업 등을 지원하고 수은은 해외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등 역할분담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뉴스핌 Newspim] 윤지혜 기자 (wisdo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