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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만인의 연인이자 섹스심벌, 마릴린 먼로

기사입력 : 2018년01월02일 14:19

최종수정 : 2018년01월02일 14:19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46)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전설적인 여배우, 마릴린 먼로! 그녀는 지하철 환풍구 위에서 허벅지가 드러나도록 치마를 펄럭이며 천진하게 웃는 모습,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 도발적인 입술, 반쯤 감은 눈, 출렁거리는 금발 등의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녀에게는 ‘만인의 연인’, ‘섹스심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백치미를 가진 대중문화의 우상’ 등 수많은 찬사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먼로는 백치미를 지닌 섹스심벌로만 알려져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는 달리 독서를 많이 하고 사상적으로도 꽤 깊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라이프〉 지와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섹스심벌’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의 심벌이 되었든 이 심벌은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섹스심벌이 사물화될 때 그렇다. 나는 물건 취급당하는 것이 무엇보다 싫다. 하지만 내가 어떤 것의 심벌이 되어야 한다면 기꺼이 섹스심벌이 되겠다.” 이러한 발언은 그녀가 결코 백치가 아님을 보여준다.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 1962)의 유년기 이름은 ‘노마 진 모턴슨(Norma Jeane Mortenson)’이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로 태어나, 어머니가 정신질환으로 정신병원에 수용되면서 양부모의 집과 고아원을 전전하며 매우 불안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후에 먼로가 촬영장에서 여러 가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거나, 남자들과의 무분별한 애정편력에 집착한 일들을 두고 사람들은 그녀의 성장과정에서 겪은 애정결핍 때문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녀의 나이 열여섯이 되자 결혼을 하였고, 얼마 후 남편이 해병대에 입대하면서 혼자 남은 노마 진은 군수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45년 한 사진작가의 눈에 띄어 모델과 영화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이혼을 하고 할리우드로 향했는데, 이름까지 기존의 노마 진에서 마릴린 먼로로 바꾸었다.

1946년 그녀는 20세기폭스사와 계약을 맺었지만 몇 년 동안은 단역생활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1952년 《노크는 필요 없다 (Don't Bother to Knock)》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고, 1953년 《나이아가라(Niagara)》,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Gentleman Prefer Blondes)》 등 영화를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How to Marry Millionaire)》, 《7년만의 외출 (The Seven Year Itch)》과 같은 영화에서 코믹한 모습을 보여주며 ‘백치 금발 미인’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특히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는 먼로가 ‘섹스 심벌’로서의 이미지를 굳히는 데 크게 기여한다. 1954년 작품 《돌아오지 않는 강(River of No Return)》도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았는데, 이 영화의 주제곡을 마릴린 먼로가 직접 부르기도 했다.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로 1960년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먼로가 마지막으로 남긴 영화는 1961년 클라크 게이블과 공동 주연으로 출연한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The Misfits)》로, 당시 남편이던 아서 밀러가 각본을 썼다.

마릴린 먼로는 공식적으로는 세 번의 결혼을 하였다. 첫 번째 결혼은 자신의 불우한 환경에서 도피하기 위해 1942년 열여섯의 나이에 제임스 도허티라는 평범한 남자와 한 것이다. 약 4년 동안의 결혼생활은 먼로가 배우의 꿈을 안고 할리우드로 향하면서 종지부를 찍게 된다. 당시 노마 진의 꿈은 스타가 되는 것이었지만, 도허티는 노마 진의 일을 하찮게 여겼다. 1946년 9월 두 사람은 이혼에 합의했다.

두 번째 결혼은 1954년 야구계의 전설 조 디마지오(Joe DiMaggio)와 하였다. 두 사람의 결합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사람은 한창 주목을 끄는 육체파 여배우이고, 또 다른 한사람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프로야구 스타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두 사람은 모두 두 번째 결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겨우 274일 만에 이혼하게 된다.

영화 ‘7년만의 외출’ 중의 유명한 한 장면 <사진=이철환>

1955년 제작된 《7년만의 외출》이라는 영화 속에서 먼로가 연기한 한 장면이 화근이었다. 그녀가 뉴욕 렉싱턴 가에서 지하철 환풍구 위를 지나갈 때 환풍구 바람에 치마가 허벅지 위로 치켜 올라가자, 흩날리는 흰 치맛자락을 붙잡고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장면이다. 관능적이면서도 다소 익살스럽기도 한 이 장면은 곧바로 대중들에게 회자되면서 영화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까지 먼로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남게 된다.

그러나 정작 남편인 조 디마지오는 그 장면을 보고 얼굴이 새파래졌다. 아내의 치마가 허벅지 위로 올라가는 장면을 수많은 대중들이 환호하며 즐겁게 보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먼로를 호텔로 데려가 마구 때렸다. 이로 인해 영화를 촬영 중이던 그녀는 얼굴의 상처를 숨기기 위해 짙은 화장으로 분장해야만 했다. 이로부터 한 달 후 두 사람은 이혼하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애정이 완전히 식은 것은 아니었다. 디마지오는 먼로가 세 번째 결혼에도 실패하고 약물중독에 빠졌을 때 다시 사랑의 손길을 내민다. 재결합을 목전에 둔 1962년 8월 5일, 먼로는 서른여섯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그 후 디마지오는 20여 년 동안 매주 장미꽃을 그녀의 무덤에 가져다 바쳤다. 1999년 디마지오는 숨을 거두기 전 “이젠 먼로를 다시 볼 수 있겠군”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 결혼은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Salesman)》을 쓴 유명한 극작가 아서 밀러(Arthur Miller)와 1954년 이루어졌다. 두 번째 남편 조 디마지오와 이혼한 지 2년 뒤 아서 밀러와 결혼했지만 이 역시 5년 만에 끝나게 된다. 먼로는 밀러의 지성을 존경했고, 밀러에게서 태어난 후 여태껏 받아보지 못한 아버지의 정까지 느끼며 행복해 했다. 밀러 또한 먼로의 아름다움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먼로는 밀러와의 결혼생활에서 아이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자궁외 임신으로 인해 아이를 사산하고 난 후 먼로는 깊은 좌절에 빠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그녀가 출연한 영화가 호평을 받지 못하면서 먼로는 더 깊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밀러는 이러한 먼로에게 점차 염증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먼로가 당시 공연했던 프랑스 배우 이브 몽땅과의 염문설까지 터져 나오자 이혼을 결심하게 된다. 두 사람은 1961년 마침내 5년여에 걸친 결혼생활을 청산하게 된다.

이후로도 먼로는 수많은 유명인사들과의 염문설이 끊이지 않았다. 영화배우 프랑크 시나트라,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그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 등과도 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한때 세계 최고의 과학자 아인슈타인과도 꽤 깊은 관계였다고 전해진다. 하루는 그녀가 아인슈타인 박사의 사무실에서 애정을 나누고 있을 때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아이슈타인의 비서가 전화를 받고서는 케네디 상원의원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전했다. 아이슈타인은 비서에게 무슨 일로 전화를 했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조금 뒤 다시 들어온 비서는 “케네디 의원님께서, 혹시 이곳에 마릴린 먼로가 와 있지 않느냐고 물어보시라는데요.”라고 대답했다

먼로의 삶은 언뜻 화려해 보이지만 불우한 어린 시절, 정신적 불안과 약물중독, 말년의 명성추락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먼로는 1962년 8월 5일 36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다. 사인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많은 추측과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자살로 분류되고 있지만 살해당했을 가능성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먼로가 죽은 뒤에도 세상 사람들의 그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지속되고 있다. 2009년 어느 70대 여성은 마릴린 먼로 묏자리의 위에 묻힐 수 있는 권리를 경매를 통해 450만 달러에 사들이기도 했다. 이는 그녀가 한 시기를 풍미했던 세계적 여배우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36세의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항상 그때의 아름다운 이미지가 간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그녀를 대중미술 작가 앤디워홀은 황금색 바탕의 캔버스 가운데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새겼다. 그래서 먼로 그녀는 세상을 떠났지만 영원히 아름다운 여인으로 이 세상에 남아 있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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