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기락 기자] 지난 2007년 4월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판사와 검사, 변호사가 ‘출장재판’에 나선 것이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부는 수십억원대 뇌물을 시공사로부터 받은 혐의로 기소된 재개발 조합장 유모씨에 대한 재판을 경기 일산의 한 ‘병원’에서 했다.
출장재판이 열린 이유는 유씨가 하반신을 크게 다쳐 법정에 출석할 수 없다는 의사 소견서를 재판부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검사의 신문은 물론, 변호사와 판사 등이 ‘법정’을 떠나 현장 재판을 열게 됐다.
10년 후 2017년 10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박근혜 피고인의 국선변호인을 물색하고 있다. 뇌물수수 등 18개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 사임해서다.
이 사건의 재판은 변호 사건이어서 변호인이 없으면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
그런데, 나서는 변호인이 없다. 서울중앙지법 국선전담변호인 30명 가운데 박근혜 피고인의 변호 희망자는 1명 뿐인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사건 규모 등을 고려해 2~3명의 변호인을 지정할 방침이지만, 재판이 제대로 이뤄질지 현재로선 미지수다.
박근혜 피고인의 변호 희망자가 사실상 없는 이유는 변호인들이 ‘변호’보다 ‘현실’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란 시각이 법조계 주변에서 나온다. “변호사가 피고인을 변호해야 하지만, 이에 앞서 승패 가능성, 국민적 관심, 언론의 집중 조명 등 변호인으로선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는 진단이다.
국선변호인이 선임되더라도 10만쪽에 달하는 사건 기록 검토 기간을 고려하면 박근혜 피고인의 재판은 빨라야 11월 중순쯤 재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방대한 사건 기록은 둘째치고라도, 변호인으로서 조력할 수 있는 범위가 작다고 느끼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박근혜 피고인은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 건강 등 사유를 들며 강제구인까지 거부했다. 피고인은 재판에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 정당한 이유 없이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으면 구인해서라도 출석시켜야 하는데, 그게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서울법원종합청사 전경 /이형석 기자 leehs@ |
박근혜 피고인은 구속영장이 재발부되자 재판부를 불신한다고 밝혔다. 지지자들은 그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는 지난 13일 구속연장 결정 뒤, 처음 열린 16일 재판에서 “이제 정치적 외풍과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란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또 “향후 재판은 재판부의 뜻에 맡기겠다.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어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겠다. 저를 믿고 지지해주시는 분들이 있고 언젠가는 반드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법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은 거부해도 된다. 하지만, 재판부를 신뢰하지 못해 재판에 출석하지 않겠다는 것은 법정농단이자, 국가농단, 국민농단 아니겠는가?
[뉴스핌 Newspim] 김기락 기자 (people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