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떠난 마을에 고양이만 덩그러니
안타까운 캣맘, 먹을 거리 갖다주기도
“구해주세요” 동물보호단체 요청 빗발
[뉴스핌=황유미 기자] "어휴, 고양이 많죠. 저 안 쪽 골목으로 들어가보면 있어요."
신정네거리역 인근의 한 식당 주인은 신정 2-1지구 재개발 지역에 남아있는 길고양이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신정네거리역 1번 출구를 지나쳐 골목으로 발길을 옮겼다.
신정네거리역 인근 재개발 구역. 지난해부터 주민들이 하나둘씩 동네를 떠나기 시작했다. 빈집만이 동네를 지키고 있다. 황유미 기자 |
신정동 주민 김정우(대학생)씨는 손가락으로 건너편 골목을 가리키며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고양이들이 모여서 산다"며 "비어있는 2층 집에 새끼를 낳기도 하고 여러마리가 같이 지내는 것 같더라"고 설명했다.
신정3동 골목시장 쪽으로 들어갔다. 부서진 유리창 조각들, 나뒹구는 플라스틱 병들, 버려진 옷과 신발들이 집 대문 안쪽마다 쌓여있었다.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빨간색 락카로 벽에 '공가'(空家, 빈집)라고 적힌 집들도 있었다.
몇몇 대문 앞에는 버려진 쓰레기들과 다르게 가지런히 놓여진 그릇들이 있었다. 그 안에는 고양이 사료 몇 알이 남아 있거나, 물이 담겨있었다. 누군가 길냥이들의 식사를 챙겨주고 있는 것이었다.
빈집 대문 앞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빈 그릇. 누군가 길고양이의 밥과 물을 챙겨준 것으로 보인다. 황유미 기자 |
빈집 한쪽 계단위에 놓여진 고양이 사료 그릇. 황유미 기자 |
"야옹" 골목 한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멀리 대문 담벼락에 앉아있는 노란색 길냥이가 보였다. 기자가 가까이 다가가자 고양이는 얼른 몸을 일으켜 빈집으로 쏙 들어갔다.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검은색과 갈색의 얼룩무늬의 고양이가 대문 안쪽에서 기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자가 가져온 고양이 통조림 사료를 뜯어 내밀자 그 고양이도 집안으로 들어가버렸다.
10분 정도 대기하자, 얼룩 고양이는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사료 캔으로 다가왔다. 사료에 입을 대면서도 주위에 대한 경계는 늦추지 않았다. 얼룩 고양이의 목에는 노란색 목끈이 있었다. 주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악취가 진동해 주위를 둘러보니 생활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 섞여있는 더미가 고양이들이 자리잡은 빈 집 맞은 편에 있었다.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환경에 고양이들만이 남아있는 것이었다.
다른 골목에서 만난 몇몇 길냥이들 또한 초록색이나 빨간색 목끈을 목에 걸고 있었다.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고양이도 있었다.
재개발 지역에서 만난 길고양이들. 왼쪽 고양이는 목에 초록색 목줄을 걸고 있다. 황유미 기자 |
폐허로 가득한 골목을 지날 때마다 빈집 어딘가에서 고양이들끼리 싸우는 소리도 들려왔다.
인근 주민 정모(남·71)씨는 "길냥이들이 원래 사람을 무서워하긴 하지만 여기 고양이들은 유독 사람을 피하는 것 같다"며 "버려져서 그런가"라며 말끝을 흐렸다.
'행복·축복이(자신이 키우는 고양이 이름) 엄마'라고 밝힌 캣맘 김모씨는 "이곳을 떠난 시장 상인들 중 키우던 고양이를 두고 가신 분들이 있는 것 같다"며 "공사 인부들이 남긴 막걸리를 먹으려하는 것을 보고 고양이들이 잘못될 것 같아 밥을 챙겨주기 시작했다"고 했다.
서울시 내 재건축·재개발 준비 지역(착공 이전 단계)은 300여곳. 주민들이 떠난 지역에는 길고양이 만이 남아 빈집을 지킨다. 먹을거리도 없는 비위생적인 환경은 고양이들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
철거 재건축·재개발 단지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를 구해달라는 요청이 동물보호단체에 쏟아지는 이유다.
동물보호단체 카라(KARA) 한혁 활동가는 "도시 재개발 사업 추진 시 환경 영향에 대한 평가를 할 때 길고양이 개체수 조사를 하는 등 함께 살아가는 동물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또 사시는 분들이 동네 길고양이들을 데려가주시면 좋을텐데 오히려 자기가 키우던 동물도 버리는 분들이 있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뉴스핌 Newspim] 황유미 기자 (hum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