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재계팀장]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1997년 출간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에세이 제목이다. 벽을 넘어 세상을 보려는 경영자 이건희의 진지한 고민이 담겨있는 책이다. 문득 이 책의 제목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50일도 남지 않은 이번 정부가 청년고용대책을 또 내놨다. 차기 정부가 연속성을 가지고 추진할지 의문인 대책 투성이다. 정말 생각 좀 하면서 일자리 대책을 고민하고 있는가.
이번에도 정부의 일자리 대책은 국가재정이 투입되는 단기적 처방이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공공부문의 청년일자리를 늘리고 생계가 어려워 구직을 포기하는 실업자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취업의 취약계층을 지원한다는 것에 공감하나, 또 단발성이다.
최악의 청년 실업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무엇이든 해봐야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의지가 있다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예산을 쏟아붓고도 질 낮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 말고는 정녕 답이 없나.
박근혜정부에서 내놓은 일자리 대책은 무려 열번이나 된다. 매년 두번씩 대책이 나온 셈이다. 그럼에도 실업률은 5%대(2월 고용동향)이다. 실업률이 5%를 넘은 것은 7년1개월 만이다. 체감실업률은 그 두배다. 청년실업률은 12%를 넘어섰다. 이 역시 체감실업률은 그 두배다. 백약이 무효인 것인지, 열번이나 이어지는 대책이 잘못된 것인지 따져볼 문제다.
차기 정부가 연속성을 가지고 추진할만한 구미가 당기는 대책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은 문제다. 땜질 처방이라는 비난이 이번 대책 발표와 함께 쏟아졌다. 국가 경제나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당장의 해법을 내놓으라고는 못한다. 그런 깜짝 놀랄만한 해법은 쉽지 않다. 그럼 최소한 새 정부가 집권하더라도 이어갈 장기적 관점의 대책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는 또 있다. 양질의 일자리는 기업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가 우리 일자리의 주체다. 하지만 깊어지는 불황 국면에 기업에 대한 불신, 대내외 불확실성까지, 경영여건이 녹록치 않은 기업들은 고용을 늘릴 여력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회사는 이익이 나지만 인력은 계속 줄이는 악순환은 반복되고 있다. 땜질 처방의 일자리 대책만으로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땜질처방, 정치권은 역주행 행보만 거듭하고 있다. 경제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풀어도 모자랄 판에 표심을 자극하는 기업 때리기 포플리즘 공약은 봇물을 이룬다. 전문가들의 수많은 중장기 일자리 대책 제언을 귀담아 들으면서, 당장은 경제의 중심축인 기업이 활력을 찾도록 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과감하게 규제를 풀고 일자리 해법을 시장에 의해 해소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정부의 일자리 대책이 나온 이날. 재계는 "이제 불신의 벽을 허물고 공정사회, 시장경제, 미래번영의 틀을 함께 짜자"고 정부에 제언했다. 정책시계가 5년이 아닌 10년, 30년을 내다볼 수 있어야 기업들도 그에 맞게 사업계획을 짤 수 있다는 호소다. 이번 정부든, 차기 정부를 이끌겠다는 대선주자들이든. 일자리 문제에 대해서는 중장기 관점의 해법 모색과 함께 시장경제에 발맞춘 기업관을 가져야 하겠다.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은 별거 없다. 양질의 일자리도 경제가 살아나고 기업 경영이 활성화되면 많은 부분 해소된다.
오늘부터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누가 알겠는가. 국민들이 공감하는 일자리 대책이 깜짝 등장할지.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 재계팀장 (ikh@newspim.com)